매일신문

[수암칼럼] '河馬(하마)세대' '치타세대'

황금 총을 든 사막의 황제 카다피, 그가 시민군의 총부리 앞에서 숨진 순간, 리비아는 서방 강대국들의 먹이 사냥터로 돌변한다.

막대한 전비(戰費)를 쏟아부으며 3천600회의 폭격으로 시민군을 지원했던 프랑스와 영국 등은 이미 리비아 석유를 삼키고 있다. 뒤늦게 끼어든 미국, 엉거주춤 양다리 걸치던 중국과 러시아, 카다피를 끼고 돌던 이집트, 틈새시장에서 구멍가게 규모의 투자를 엿보아온 한국 등 저마다 카다피와 시민군과의 의리와 친밀도에 비례해 나눠 가지는 파이의 크기가 달라질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리비아의 미래는 나머지 아프리카 대륙 국가들의 운명과 미래를 결정하는 정치'경제적 바로미터가 될 수밖에 없다.

아프리카! 오드리 헵번의 가슴에 안긴 뼈만 앙상한 소년, 내전(內戰)으로 망가진 흙벽과 찢어진 천막의 빈민촌 그리고 키보다 더 긴 총을 메고 있는 어린 소년병(兵)들의 퀭한 눈동자만 기억되는 검은 대륙. 그러나 오늘날의 아프리카는 표범의 눈빛으로 21세기를 노려보고 있는 잠재의 땅, 지구 최후의 꿈이 묻혀 있는 미래의 유토피아다. 2050년 무렵 22억 인구로 성장할 아프리카는 이미 휴대폰 가입자 수만도 5억 명으로 미국의 1.6배를 넘어섰다. 또한 경제성장률(2010년 기준) 세계 최고의 나라는 중국이나 미국이 아닌 앙골라(11.1%)였다. 2011년 현재 성장률 세계 10위권은 나이지리아,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모잠비크, 콩고, 가나, 잠비아 등 아프리카 8개국이 휩쓸고 있다. 1인당 GDP도 10년 새 1천700달러로 급성장했다.

외국의 투자는 10년 새 5배로 늘어 550억 달러를 넘는다. 땅속에는 전 세계 금의 14.5%, 백금(白金)은 95%, 다이아몬드는 60.3%를 묻어놓고 있다. 굶어 죽는 이미지만 남은 대륙에 사실은 전 세계 농경지의 60%에 달하는 6억㏊가 미개발로 남아 있다. 그런 무한 잠재력을 꿰뚫은 선진 강국들은 지난 10년 사이 외국인직접투자(FDI)로 550억 달러를 아프리카에 쏟아부었다. 21세기 중엽 22억 명의 소비자가 생겨날 대륙을 상상하면 550억 달러(60조)의 투자 정도는 껌 값 수준이다.

앞으로 급속한 투자와 성장은 21세기 아프리카를 눈이 돌아갈 만큼 변화시키게 돼 있다. 과거 몇몇 서구 국가들이 하이에나처럼 아프리카 자원을 불법 사냥하거나 식민지로 수탈해 왔었지만 이제는 판이 달라졌다. 아프리카가 스스로 눈을 뜨고 하이에나 강대국끼리의 힘겨루기가 일정한 균형을 잡게 되면서 독식은 불가능해진 것이다. 거꾸로 누가 더 아프리카의 환심을 많이 사느냐는 애교 게임과 무상 지원을 포함한 투자의 판돈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카다피도 그런 게임의 소용돌이 속에서 최후를 맞았다고 볼 수 있다. 발 빠른 중국은 콩고에 국회의사당, 종합경기장 등을 공짜로 지어주면서 90억 달러 규모의 자원 확보를 굳혔고 앙골라엔 7년 전부터 20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했다. 일본의 스미토모도 니켈 광산 개발 등에 끼어들고 코카콜라는 아프리카 청년을 노린 '번'이란 음료를 개발, 공략 중이다.

 오늘의 아프리카는 '하마세대'와 '치타세대'로 나뉘고 있다. 하마세대는 어제 놀던 똑같은 그 웅덩이에서 느린 하품이나 하며 지내던 변화를 싫어하는 식민세대다. 반면 치타세대는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며 탐색해 가는 역동적인 신세대를 말한다. 21세기 아프리카를 움직이고 있는 치타세대의 출산율은 세계 평균의 1.5배로 1천 명당 33.4명. 평균 연령 역시 23.5세로 유럽(39세) 북미(38세) 아시아(29.7세)보다 젊다. 생산성 높은 24세 미만의 인구 비중은 60%로 20년 이내에 전체 노동인구는 세계 최대, 최고가 된다.

무한 자원의 잠재력에 인적 잠재력이 보태지면 오드리 헵번의 가슴에 안겨 죽어가던 아프리카의 모습은 흘러간 흑백영화가 될 것이다. 이처럼 전 세계가 아프리카 치타세대를 향해 목을 매고 있는 이때 우리는 아프리카 '파이'를 얻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나마 아프리카를 뛰어다닌 정부 팀을 다이아몬드 회사 의혹 시비에 끌고 와 정쟁(政爭)거리로 만들어 싸움질이나 하는 게 우리의 모습이다. 그런 '하마세대' 같은 타성과 마인드로 비상(飛上)하고 있는 아프리카 치타세대의 변화를 어떻게 따라갈 것인가. 참으로 답답한 나라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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