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이 대세다. 서양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이미 웬만한 모임이나 가정에서 와인을 곁들인 식사가 많아졌다. 유럽 현지에서도 와인투어를 즐기는 동양인이 많아졌고, 한국인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여름 남프랑스로 가는 길에 쌩떼밀리용(St. Emillion)을 지나면서 샤또 시아누릭에 들렀다. 샤또는 본래 성이라는 말이지만, 와이너리와 함께 와인 양조장을 일컫는다. 넓은 포도밭을 끼고 중세 성처럼 꾸민 집과 와인탱크, 저장고 등을 둘러보고 분위기 있는 거실에서 와인을 맛보는 동안, 설명하는 집사는 여행객이 와인을 좀 알고 있다는 사실을 기뻐했다. 뻬뜨뤼스(Petrus)라는 이름난 와인을 만드는 뽀므롤(Pomerol)지구가 바로 곁에 있는데, 중국인들이 와인투어를 와서 몇십 만원씩이나 하는 비싼 와인을 싹쓸이한다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많이 팔려 좋지 않으냐고 되물었더니, 그는 와인산업이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라 문화를 함께 파는 산업이라면서, 그런 싹쓸이는 원하지 않는다고 손사래쳤다.
프랑스의 유명한 와인산지는 투어 예약이 2, 3년 전에 끝나기도 한다. 아무리 사람이 몰려도 정해진 인원을 넘지 않고, 선을 넘는 바가지요금도 없단다. 또 기후가 좋지 않은 해는 수확량을 대폭 줄여서 와인의 품질을 유지한다. 이것이 이름난 와인을 지켜가는 비법이란다.
그들은 와인을 역사문화와 엮어서 팔 줄 안다. 교황을 위한 와인이라는 샤또네프 뒤 빠쁘(Chateauneuf du Pape)도 그렇다. 14세기에 교황권이 왕권에 밀려 형편없이 작아지자, 교황청은 약 70년 세월 아비뇽으로 옮겨 살았다. 이때 가엾은 교황을 위로하려고 주변에서 바친 술이 이것이다. 이런 사연은 아비뇽 여행객들에게 이 와인을 비켜가지 못하도록 유혹한다.
프랑스 알자스에는 와이너리가 170㎞나 이어지는 와인가도(Route des Vins)가 있다. 제라늄 꽃이 만발한 리보비에(Ribeauville), 동화 같은 마을 리크비르(Riquewihr)의 겉모습은 독일에 가깝다. 리슬링(Riesling) 품종으로 만든 이곳의 화이트 와인은 아름다운 성과 카페가 겹쳐지면서 그 맛을 더한다. 꼴마르(Colmar)는 걸어서 프랑스와 독일을 같이 맛볼 수 있는 낭만의 소도시이다. 1유로에 한 컵의 지역 와인을 맛볼 수 있는 이곳은 중세로 시간 여행을 온 듯 느끼게 만든다.
프랑스 와인 마케팅의 최고 걸작은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다. 부르고뉴 지방의 보졸레는 가메(Gamay) 품종만 있어 좋은 와인을 만들기 어려운 산골이다. 쌓여가는 재고를 보다 못해 고안해낸 것이 와인을 숙성시키지 않고 일찍 팔자는 역발상이었다. 프랑스어 'Nouveau'는 'new'라는 뜻인데, 숙성이 생명인 와인을 익기도 전에 팔아 성공한 사례다. 올해 11월 셋째 주 목요일에는 어떤 쌈박한 상표를 붙인 보졸레 누보가 나올지 기대된다.
박 정 희(원광디지털대 차문화경영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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