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안도색기(按圖索驥)

임기응변은 재치 있는 변통으로 일을 해결하는 능력이다. 기발한 착안이 중요하지만 단지 빠른 수 읽기만으로는 매번 좋은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정확한 상황 판단과 경험에서 비롯된 실행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돌발 행동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서다.

반대의 경우로 그림을 보고 천리마를 찾는다는 의미의 고사성어 '안도색기'(按圖索驥)가 있다. 원리원칙만 따져 융통성 없이 일을 처리한다는 뜻이다. 중국 춘추시대 진나라의 백락(伯樂)은 좋은 말을 알아보는 안목이 뛰어났다. "천리마는 늘 있지만 백락은 항상 있는 게 아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말에 대한 식견이 탁월했다. 백락에게 우둔한 아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좋은 말을 찾았는데 이마와 툭 튀어나온 눈이 아버지가 쓴 책과 똑같습니다. 다만 발굽이 조금 다르게 생겼습니다"고 말했다. 백락이 보니 말이 아니라 두꺼비라 기가 막혀 웃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최근 인천의 조폭 난투극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높아지자 조현오 경찰청장이 뒤늦게 과감한 총기 사용 등 강력 대응을 지시했다. 조 청장은 "조폭에 주눅이 들어 뒤꽁무니를 빼는 경찰관은 경찰 조직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질타했다. 맞는 말이지만 현재 경찰이 처한 사정은 청장의 주문과는 판이하다.

총기 사용은 상대를 일거에 무력화시킨다는 점에서 경찰이 쓸 수 있는 최고의 무기지만 상황을 해결할 수 없을 때 가동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그만큼 합목적성과 까다로운 절차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니 경찰의 총기 사용이 임기응변의 범주에 드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 발단은 부실한 조폭 대응 매뉴얼이다. '집단폭력 사건 신고 시 조치 요령'에 어떤 상황을 조폭 사건으로 보는지, 총기는 어느 경우에 사용하는지 등 현장에서 긴급히 판단해야 할 요소들이 빠져 있다. 총기 사용 여부는 지휘관이 그때그때 알아서 판단하라는 소리다.

이번에 드러난 경찰의 미숙한 초동 대응과 상황 보고는 평소 조폭에 대한 개념과 지식만 있었지 제대로 된 규정도 없고 실전 훈련은 더더욱 안 되어 있다는 방증이다. 임기응변마저 서툴렀다. 조폭과의 전쟁이 그림을 보고 천리마를 찾는 꼴이 되지 않도록 빈틈없는 준비와 훈련을 거듭해야 한다. 맹탕 매뉴얼만 믿고 두꺼비를 말이라고 단정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유념해야 한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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