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반 이인화는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소설을 썼다. 동일한 질문을 우리는 늘 하며 산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가?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등.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끊임 없는 물음은 평생에 걸쳐 이루어져야 하지만, 가장 치열하게 그것을 물어야 하는 시기는 바로 청소년기일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을 물어야 할 시기에 그것을 묻지 않는다면, 이후 언젠가는 훨씬 더 아프게 그 질문을 해야만 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J.슈타이너의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는 그림책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책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곰 한 마리가 있었다. 곰은 겨울이 되어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동굴에서 겨울잠을 잤다. 그런데 곰이 쿨쿨 잠자는 동안 사람들이 숲으로 찾아와 나무를 쓰러뜨리고 숲 한가운데에 공장을 세운다. 봄이 되어 땅속 깊은 곳에서 깨어난 곰은 동굴에서 나와, 숲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너무나 놀라 멍하니 공장을 쳐다보고 있는 곰을 발견한 공장 감독이 곰을 인사과장, 부사장에게 데려가고, 그들은 곰을 게으름뱅이, 지저분한 놈으로 치부해버린다.
그리고 마지막에 만난 사장은 곰에게 진짜 곰인 것을 증명해보라고 한다. 곰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서커스단이 있는 도시로 간다. 하지만 서커스단의 곰들은 곰을 곰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무리에서 벗어난 단 한 마리의 곰을, 다수의 곰들은 같은 종족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자신이 곰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 곰은 하는 수 없이 공장에서 일하게 된다. 하지만 겨울이 가까워지자 곰은 다시 피곤해지고 잠이 와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었고, 끝내 공장에서 쫓겨난다. 그러나 곰은 숲속 동굴 앞에 와서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린 것이다. 동굴 앞에 앉아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곰은 쏟아지는 눈 속에 묻혀가고, 그림책은 쓰러진 곰과 그 위에 쌓인 하얀 눈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난다.
곰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끝내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수동적으로 상황에 대응하다가 쓸쓸하게 죽는다. 이 짧은 그림책 속에서 작가는 타의에 의해 자신의 존재기반을 빼앗기고, 마침내 자기 자신조차 잃어버리는 현대인의 초상을 보여준다.
사노 요코의 '100만 번 산 고양이'는 100만 년이나 죽지 않은 고양이 이야기다. 100만 번이나 죽고 100만 번이나 살았던 멋진 얼룩 고양이는 100만 명의 사람이 귀여워하고, 100만 명의 사람이 그 고양이가 죽었을 때 울었지만, 단 한 번도 울지 않는다.
고양이는 임금님, 뱃사공, 서커스단 마술사, 도둑, 홀로 사는 할머니, 어린 여자 아이의 고양이였지만, 매번 주인을 싫어했고 죽는 것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누구의 고양이도 아닌, 처음으로 자기 자신만의 고양이가 된다. 도둑고양이가 된 것이다. 그리고 새하얗고 예쁜 고양이와 사랑에 빠진다. 하얀 고양이는 귀여운 새끼 고양이를 많이많이 낳았고,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들을 자기 자신보다 더 좋아할 정도가 된다. 마침내 새끼 고양이들이 자라서 뿔뿔이 흩어지고, 모두 도둑고양이가 되었을 때 고양이는 만족한다. 그리고 하얀 고양이가 늙어 죽자 고양이는 처음으로 운다. 밤이 되고 아침이 되도록, 또 밤이 되고 아침이 되도록 고양이는 100만 번이나 운다. 그리고 하얀 고양이 곁에서 조용히 움직임을 멈춰 두 번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
우리는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으로 살고자 한다. 그리고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맛본다. 두 그림책은 사람이 사람인 까닭은 무엇인지,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수성구립 용학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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