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북의 혼] 제6부-'하면 된다' 정신 <3>박정희 리더십

"정치는 국민의 눈물 닦아주는 것" 국민을 위해 미래를 만들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인간적 리더십과 미래지향적 사고를 통해 가장 못살던 국가를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시켰다. 청도 신도리에 있는 동상.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인간적 리더십과 미래지향적 사고를 통해 가장 못살던 국가를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시켰다. 청도 신도리에 있는 동상.
박정희 전 대통령을 그리며 구미 생가를 둘러보고 있는 관광객들.
박정희 전 대통령을 그리며 구미 생가를 둘러보고 있는 관광객들.

국내외에서 박정희 리더십을 배우자는 논의가 활발하다. 버마(현 미얀마)나 파키스탄보다 못한 절대빈곤 국가에서 세계 10대 경제강국으로 성장한 주 요인이 박정희 전 대통령 덕분이라는 평가에서다. 특히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중산층이 무너지자 국민들 사이에서 경제를 일으켰던 '박정희 향수'는 더욱 심해지는 경향이다. 여기다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개발도상국들도 한국의 경제발전 모델을 배우고자 열심이다. 박 전 대통령은 어떤 리더십을 가졌을까.

◆인간적 리더십

1970년대 초 마산 한일합섬 공장을 방문했을 때였다. 나이 어린 여성 근로자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필요한 게 뭐냐?"고 물었다. 그 여성이 "공장장이 가끔 영어 단어를 쓰며 말씀하시는데 알아듣지 못할 때 부끄럽고 속이 상한다. 일에도 지장이 많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순간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대통령이 수행하던 김한수 사장에게 "이들을 위해 야간학교라도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이렇게 해서 학력 인정을 받는 산업체학교가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고, 수많은 어린 소녀 근로자들이 배움의 한을 풀었다. 그는 "정치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고 했다.

어떤 학자들은 박정희 리더십이 세종대왕의 리더십과 닮았다고 평가한다. 백성을 위해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이나 빈곤 탈출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한 박 전 대통령이나 '백성이 근본'임을 인식하고 정책을 추진한 점에서 비슷하다는 것.

그는 빈곤 탈출을 위해서는 경제발전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만든 끝에 수출이 답이란 결론을 얻었다. 수출을 하기 위해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중화학공업을 육성했다. 새마을운동을 전개함과 동시에 국토종합계획도 수립했다.

박정희는 '주식회사 대한민국 사장' '경제개발 전쟁의 총사령관' 역을 자임했다. 1960년대 초 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집행되고 있을 당시 대통령 집무실에는 100여 개가 넘는 민간공장 건설 진행 상황을 기록한 대형 패널을 회전기둥에 묶어 한 장씩 넘겨가며 볼 수 있는 장치가 있었다고 한다. 기업을 만들어 경제를 일으켜 세우고자 했던 그의 열정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인재활용 리더십

주중 중국대사(1993.4~1995.12)를 지낸 황병태 전 대구한의대 총장은 중국 고위층에 인기가 많았다. 당 및 정부 주요 인사들과 필요할 때 수시로 만날 수 있었다. 대사직을 그만두고 7년이 지난 뒤에도 중국 정부 초청으로 가서 국빈에 준하는 환대를 받았다. 요즘 우리나라가 파견한 주중 중국대사관 관리들이 중국에서 외교부 고위 공무원 만나기도 어려운 실정임을 감안하면 그에 대한 중국의 대우는 파격적이었다.

어떻게 황 대사는 중국에서 귀빈 대접을 받았을까. 그가 털어놓은 비결은 경제기획원 실무 총책임자로 우리의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입안하고 추진한 경험 덕분. 개방 및 개발정책을 표방한 중국은 후진국에서 단번에 산업화를 이룬 한국의 경험이 필요했고, 황 대사가 적임자였다. 황 대사는 "박정희 대통령 때 경험한 경제개발 노하우를 성심껏 전해준 것에 그들은 아주 고마워했다"고 했다. 이런 공로에 힘입어 중국 장쩌민 국가주석은 그가 이임할 때 전례 없이 석별의 정을 담은 이백의 시를 직접 써주기도 했다.

박 대통령 재임 시절 황병태 전 총장이 경제기획원 총괄실무자였다면 김용환 전 재무장관, 오원철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재무부와 상공부의 실무 관료들이었다. 대통령은 계통을 밟기보다 이들 젊고 유능한 관료들과 수시로 만나거나 직접 통화를 했다. 능력 있는 사람을 발탁하고 그들을 끝까지 믿고 중용한 덕에 그 밑에서 수련을 받은 사람들은 외국에서도 그 능력을 높이 인정받은 것이다.

◆미래지향 리더십

박정희리더십연구원 최외출 원장은 박 전 대통령이 '하면 된다'는 저돌형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된다'고 방법을 제시하는 미래지향적인 리더십을 보여줬다고 평가한다.

영남대 경산 캠퍼스를 조성할 때 일화 한 토막. 대통령이 설계 담당자를 불렀다. 캠퍼스 내 도로 폭에 대해 물었다. 16m로 하겠다고 했더니 100m로 정정하라고 주문했다. 교내 도로 16m는 당시의 도로 여건(당시 대구~경산 도로 폭 편도 1차로)에 비하면 파격적인데 대통령은 더 파격을 요구했다. "30년 뒤면 우리나라도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 도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그 덕분에 지금 영남대는 본관으로 향하는 도로가 국내 최대 폭을 자랑한다. 그때 전선도 지하로 매설할 것을 주문, 현재 영남대는 전신주가 지상에 없는 대학이다. 벌써 40년도 훨씬 전에 전선을 지하공동구로 통합관리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최 원장은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창원에 기계공업단지를 조성하면서 도로 폭을 50m로 해 지금도 창원을 방문하는 이들은 뻥 뚫린 도로를 달리며 박 전 대통령을 떠올린다. 포항 철강단지, 구미 전자단지, 울산 여천 화학단지, 창원 기계단지 등은 대통령의 아이디어와 추진력 덕분에 탄생해 산업화의 토대를 구축했다.

산림녹화를 한 것도 미래에 대한 그의 혜안을 볼 수 있는 대목. 전문가들은 개발도상국에서 산림녹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이를 가능하게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러한 리더십이 있었기에 우리는 최빈국에서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한 국가로 자리 잡게 됐다.

최정암기자 jeongam@msnet.co.kr

※외국 주요 인사들이 보는 '박정희'

▶에즈라 보겔(미국 하버드대 사회학과 교수)

"박정희가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은 없다. 그는 헌신적이었고, 개인적으로 착복하지 않았으며 열심히 일했다. 국가에 일신을 바친 리더였다."

▶브루스 커밍스(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

"그는 다른 후진국 지도자들과 달리 부패하지 않았다."

▶오버 홀트(미국 전 카터대통령 수석보좌관)

"민주화운동을 억압했으나 역설적으로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중산층을 대거 양산,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원자바오(중국 총리)

"박정희 경제개발정책은 중국 경제 개발의 훌륭한 모델이었다."

▶아로요(필리핀 전 대통령)

"1965년 필리핀 1인당 GNP 270달러일 때 한국은 102달러, 2005년 필리핀 1천30달러였을 때 한국은 1만6천500달러가 됐다. 절대빈곤 국가를 산업화가 완성된 국가로 만든 박정희의 지도력이 부럽다."

▶인바오윈(중국 베이징대 교수)

"박정희식 발전 모델이 한국에선 이미 지나간 역사가 됐을지 몰라도 세계의 많은 개발도상국에겐 여전히 중요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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