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석준 씨를 본 것은 호스피스병동 현관 입구였다. 그는 노랗게 질려서 누군가와 열심히 통화하고 있었다. 석준 씨는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해맑은 얼굴이었지만,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추측하건대 석준 씨도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말기 암 환자'임에 틀림없었다.
"어떻게 오셨죠? 부모님 중 누가 편찮으신가요?" "저, 잘못 온 것 같아요." "환자가 아직 올 단계는 아니라는 거죠. 조금 더 있다가 죽음이 다가오면 와야 한다고 생각하셨죠? 오히려 그 반대인걸요. 죽음 직전에는 오히려 호스피스 병동에는 입원이 잘 안되죠." 석준 씨의 눈이 동그래졌다. 의아해하는 그를 진료실로 안내했다. 긴 상담이 필요했다.
호스피스병동은 좀 더 인간답게 사는 곳이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죽어감'을 미화(美化)시키는 말로만 들리는 것이 우리의 일반 정서이다. 부정적인 선입관을 바꾸기 위해 첫 상담시간을 길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석준 씨는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에, 죽음의 병동이라는 곳에 그의 젊은 아내, 민경 씨를 불쑥 데려올 용기가 없었다.
진통제를 적당하게 사용하면서 민경 씨의 통증은 감쪽같이 조절됐다. 민경 씨의 식사량이 늘기 시작했다. 좋은 현상이었다. 두 달째 씻지 못한 그녀가 목욕을 하고 싶었지만, 남에게 몸을 보여 준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드디어 호스피스병동으로 온 지 일주일째 되던 날 민경 씨가 목욕을 했다. 그리고 울었다. 물론 그녀의 엄마 같은 할머니 봉사자의 손에 몸을 맡겼지만, 남에게 몸을 보여준다는 것이 속상하는 젊은 나이이다. 아무도 몰래 그녀의 두 손을 잡고 위로해 주었다.
호스피스병동에서 봉사자가 해주는 환자의 첫 목욕은 큰 의미가 있다. 움직일 수 없는 나의 몸을 어루만져 주는 인간의 따뜻함을 느끼는 반면, 이제 목욕도 스스로 할 수 없음에 대한 서글픔도 동시에 맛본다. 이제 환자가 마음의 문을 여는 신호이기도 하다.
민경 씨는 목욕한 뒤 손거울로 눈썹정리를 했다. 미술교사로 근무한 그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BB크림을 발라서인지 그녀가 한층 더 예뻐졌다. 이제는 민경 씨는 통증 속에서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비록 움직일 수 없어도 살아가고 있었다.
죽음과 싸워서 이기는 것이 삶은 아니다.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와 싸워서 이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죽음과 싸움을 멈추어야 한다. 그래야 죽음이 다가올 때까지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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