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휘둘리지 않는 교육

얼마 전 한 고3 학부모와 저녁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남부럽지 않은 직업과 수입을 가진 그와 얘기를 하던 중 화제는 자연스럽게 자녀 교육으로 이어졌다. 맏이가 3, 4곳의 대학과 전공을 생각 중인데 수학 성적이 낮아 고민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아이가 어릴 때 수학 학원에 보내지 않은 게 그렇게 후회될 수 없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다닌 영어 학원 덕에 영어만큼은 전교 최상위 수준이라고 위안했지만, '사교육을 받지 않은 탓'에 수학 성적은 평균 수준이라며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은 자신의 무관심을 탓했다. 언어'수리'외국어'탐구 영역 중 3개 또는 4개의 합산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현행 대학입시에선 어느 한 과목이 처짐 없이 다 잘해야 원하는 목표를 거둘 수 있다. 이미 나온 점수보다는 앞으로의 진로에 더 신경을 쏟아야 한다는 '원론적인' 조언은 그에게 큰 위로가 되지 않아보였다. '당신도 닥쳐보면 알 것'이라는 말에 두 아이를 둔 나 역시 슬금슬금 걱정이 됐다.

언론사에서 교육 파트를 담당하면서 수많은 학부모들을 만난다. 자식이 공부를 못해 큰 효도(?)를 한다(사교육비가 안 드니까)며 애써 초연해 하는 학부모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식 교육에 관한 한 크건 작건 죄의식을 갖고 있다. 옆 아파트의 누구 아이는 중학교 때 토익 만점을 받았다고 하더라, 수학'과학을 잘해서 특목고에 합격했다고 하더라는 식의 소문은 부모의 마음에 무거운 돌 하나를 더 얹는다. 한 달에도 수십 권씩 쏟아져 나오는 '영재 성공기'는 열패감만 더할 뿐이다. 조급함에 쫓긴 부모는 또다시 학원 전단지를 뒤지며 허리띠를 졸라맬 결심을 한다.

최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라는 단체가 수도권 사교육 과열 지구 18개 중학교의 수학문제를 분석한 결과 77%가 고 1, 2학년 수준의 문제를 출제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중학교 1학년에게 고교 수준의 문제를 낸 곳도 절반이 넘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비단 수도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구에서도 어느 중학교 수학 시험은 학원을 다녀야만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 파다하다. 능력이 부족해서 뒷받침을 못해주는 학부모는 죄인이 될 수밖에 없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점수로 줄을 세우는 대한민국의 교육풍토는 변할 줄 모른다. 입시제도는 해마다 바뀌고 학생들은 여전히 수능 점수로 줄을 선다. 학생부 실질 반영비율이 1%가 안 되는 대학들이 수두룩한 상황이고 보면 전교 몇 등을 해도 안심을 할 수가 없다. 특히 올해처럼 '쉬운 수능'이 되면 전 영역 1등급을 받아도 의대 진학을 자신할 수 없다. 학생들의 개성과 적성에 맞춰 개발했다는 전형은 갈수록 거미줄처럼 복잡해지고, 각종 전략을 앞세운 입시 컨설팅이 인기를 끈다. 수능시험을 쉽게 출제한다는 데, EBS교재에서 70%를 낸다고 하는데 그럴수록 '돈이 드는 전략'은 더욱 기세등등하다. 대학 가는데 도대체 무슨 전략이 있어야 하는 것인지 혀를 차 보고, 그런 전략을 강요하는 입시 체제를 탓 해보지만 공허한 메아리로 울릴 뿐이다.

하지만 이제 학부모들도 긴 안목으로 자녀의 장래를 내다봐야 할 때다. 당장 3, 4년 후면 대학 정원이 고교 졸업생 수를 웃돌게 된다. 공부를 못해서, 부모가 뒷받침을 못해줘서 특성화고에 가고, 전문대에 입학한 학생들이 졸업 후 4년제 대졸자보다 높은 연봉을 받고 대기업에 줄줄이 입학하는 게 요즘이다. 잘 된 진로 설정과 목표 의식이 자녀의 장래에는 더 중요하다. 2012학년도 대입 수능을 일주일여 앞둔 지금, 세상에서 성공하는 길이 수능 점수가 다가 아니라고 위로한다면 정말 철없는 얘기일까.

최병고 사회1부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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