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북의 혼] 제6부 '하면 된다' 정신 <4> 박 대통령과 구미산단

'전자'가 생소하던 시절, 朴 대통령은 세계적 전자도시 '씨'를

1973년 첫 수출을 시작한 구미는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300억달러 수출을 달성하며 세계 최대 전자산업도시로 성장했다.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최중심에 있는 구미 삼성전자 스마트시티 부품생산라인.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1973년 첫 수출을 시작한 구미는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300억달러 수출을 달성하며 세계 최대 전자산업도시로 성장했다.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최중심에 있는 구미 삼성전자 스마트시티 부품생산라인.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국내 총 수출의 10%를 담당하는 구미산단 전경.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국내 총 수출의 10%를 담당하는 구미산단 전경.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구미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박 전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구미는 현재 세계 최대 전자도시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국내 지방자치단체 사상 최초로 300억달러 수출을 달성한 도시가 됐고, 현재는 IT융복합 하이테크밸리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란 배경이 작용하긴 했어도 구미산업단지는 다른 곳과 차별성이 있다. 포항 철강, 창원 기계, 여천 화학 등 정부 주도하에 조성된 곳과는 달리 주민들의 자발적 산단 조성 의지가 시발점이 됐기 때문이다.

◆4인방의 활약

1969년 1월 3일 선산군 구미읍 사무소. 박창규 선산군수를 포함한 50여 명의 지역 유지들이 모였다. 구미에도 산단을 조성, 잘 살아보자는 결의를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공업화 바람을 타고 전국 각지에서 저마다 자기 고장에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쓸 때였다. 즉석에서 '공단설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됐다.

구미산단 조성 4인방 중의 한 사람인 장월상 씨가 위원장(처음에는 박 군수가 추대됐지만 행정기관장 특성상 제약 때문에 곧장 씨로 바뀜)을 맡았다. 박 전 대통령과 개인적 친분이 두터웠던데다 추진력이 뛰어났던 그는 며칠 뒤 양택식 도지사와 마주앉았다. 양 도지사는 달성 등 여러 곳의 후보지를 두고 고민하던 중이었다. 도지사가 망설이자 장월상 씨가 승부수를 띄웠다. "스님이 본인 머리 못 깎는 것처럼 각하가 나서서 구미에 하라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고향이 발전하는 일인데 각하께서 싫어하겠습니까?" 그래서 입지로 구미산단이 결정됐다. 이런 공로로 양 씨도 4인방으로 인정됐다.

곽태석 씨는 구미 출신 재일교포 기업인. 박 전 대통령의 도움을 받아 일본도시바와 합작, 한국도시바를 세움으로써 구미에 전자공업의 포문을 연 주인공이다. 그가 구미에 당시로선 생소한 반도체 부품공장을 세운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고, 우리 전자산업 발전의 첫 단추가 여기서 꿰졌다.

또 한 사람은 한국폴리에스텔(이후 코오롱) 대표 이원만 씨. 영천에 공장을 지으려다가 구미로 방향을 잡아 초기 산단 설립에 크게 이바지했다. 진해에선 공장용지를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전국에서 가장 젊은 도시

구미산단의 시발점인 1단지 조성은 2개의 사업주체가 구심점이 됐다. 섬유업종 중심의 일반단지는 경상북도, 전자업종 중심의 전자단지는 한국전자공업공단이 주도가 돼 개발했다.

구미산단이 주목받은 것은 전자단지 조성 때문. 전자라는 말 자체가 생소했지만 정부는 전자공업을 수출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전자공업진흥 8개년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선 대규모 집약적인 전문단지 조성이 필수적이었다.

이때의 일화 한 대목이다. 이후 구미산단 조성을 맡은 수자원개발공사 안경모 사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찾아갔다.

"전자 부품은 염분에 노출되면 상하기 때문에 해안이 아닌 내륙도시가 산단으로 맞습니다. 구미는 낙동강을 끼고 있어 공장용수 공급이 쉬운데다 경부선 철도와 경부고속도로가 있어 물류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노동력도 충분합니다. 구미로 결정하시지요"라며 구미 타당성을 설명했다. 듣고 있던 대통령의 입에서 '임자가 책임지고 한 번 해봐'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뒤이어 정부의 후속 조치는 일사천리였다. 1970년 8월 청와대 수출진흥확대회의에서 구미에 전자공업전문단지 조성이 공식 발표됐다.

전자산업 육성과 수출 증진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출범한 구미산단은 1973년 4월 500만달러의 첫 수출고를 기록한 이래, 2년 만에 1억달러를 달성했다. 1979년부터는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4%를 담당했다. 2005년 지방자치단체로는 전국 최초로 수출 300억달러를 달성했다. 2011년 현재 구미는 국내 총 수출의 10%를 차지한다.

구미산단이 비약적 발전을 한 것은 우수 인력의 공급이 큰 몫을 했고 이는 박 전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 덕분이었다. 구미상의 김종배 사무국장은 "금오공고(기계), 구미전자공고, 금오공대 설립을 통해 경쟁력 있는 인력을 양성했다. 특히 금오공고는 국방예산을 지원받게 해 학비가 없었다. 졸업 후 해당 분야 부사관으로 입대시켰다가 제대하면 다시 관련 직종에 근무하는 식으로 기술력을 다져 나갔으니 기업들 만족도가 엄청 높았다. 이게 구미 기술 경쟁력의 원천이 됐다"고 했다.

구미의 강점은 IT와 접목된 풍부한 기술인력. IT 기술력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타 산업으로 접목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래서 요즘 외국의 섬유나 자동차 부품 기업들이 구미를 많이 찾는다. 구미상의 김 사무국장은 "40년간 축적된 기술 인력이 상시 대기하고 있어 언제든지 공장 가동이 가능하다 보니 외국기업이나 다른 분야 기업들의 투자가 증가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전자도시로 성장해오면서 구미는 평균 연령 34세로 전국에서 가장 젊은 도시가 됐다. 30대 이하가 인구의 70%를 차지한다. 1인당 GRDP(지역총생산)는 5만4천달러로 전국 2위다.

◆고부가 하이테크 도시로 변신 중

구미산단은 4단지까지 분양이 완료돼 공장들이 본격 가동을 하고 있으며 현재 하이테크밸리인 5단지와 경제자유구역이 조성 중이다.

하이테크밸리에는 첨단 IT융복합산업을 비롯해 모바일, 신재생에너지, 탄소섬유소재, 항공전자부품산업 등이 입주한다. 국내기업은 물론 외국기업과 첨단 R&D센터, 외국인 정주시설을 집중조성해 구미를 세계적인 산업도시로 만드는 첨병 역할을 하게 된다.

구미시는 도심 금오공대 터 8만5천㎡엔 산단지원시설을 조성 중이다. 구미시 기업사랑본부 김홍태 단장은 "모바일융합기술센터, 전자의료기기 기반 구축, 3D기술 개발, 센서기술 보급 등을 목적으로 한 이 시설이 준공되면 하이테크밸리, 경제자유구역과 연계해 구미의 모바일 융합기술력이 몇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최정암기자 jeong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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