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출향인사] 이영희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 회장

"한국 건축 대명사 됐지만 아직 마음에 드는 작품 없어"

이영희 희림 회장
이영희 희림 회장

희림(熙林). 빛나는 햇살이 가득한 울창한 숲이 떠올려지는 이름이다.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지지만 한국 건축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인천국제공항'아시안게임 주경기장,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산업은행 본점'코리아디자인센터, 부산국제영화제 '영화의 전당', 강원 평창 동계올림픽 주경기장'강원랜드 등 이루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1957년 서울대 건축학과에 입학한 이후 반세기가 넘게 건축 외길만을 걸어왔네요. 나름대로는 우리 건축문화의 발전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고도 자부합니다. 그러나 정말 마음에 드는 작품은 아직 남기지 못했습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은 셈입니다." 한국 건축계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원로이지만 이영희(73) 희림 종합건축사 사무소 회장의 '욕심'은 끝이 없는 듯했다.

한국건축문화 대상을 3년 연속 수상한 희림은 국내도 국내이지만 해외에서 더 명성이 자자하다. 최근에는 세계 유명 건축가인 피터 프란 씨와 합작, 국내 업체로는 처음으로 미국에 법인을 설립했다. 2009년에는 권위 있는 건축잡지 '빌딩 디자인'의 세계 주요 건축설계업체 조사에서 당당히 12위(아시아 2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외환위기 직후부터 적극적으로 글로벌시장 개척에 나서 현재 미국 뉴욕 등 해외 40여개 도시에 법인'지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연매출 1천800억원 가운데 30% 정도는 외국에서 거두고 있는데 비중을 더 높일 생각입니다.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길게 보고 작업을 해온 결과 '진실이 느껴진다'는 평가를 얻은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죠."

이 회장이 건축과 인연을 맺은 것은 경북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혜안' 덕분이었다. 어릴 때부터 학업에 탁월한 재질을 보였던 터라 당시 풍조대로 법조인이 되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던 저에게 선생님은 이공계 진학을 권했다.

"한국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할 것이며,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는 공부를 하라는 말씀이셨죠. 강제징용에 끌려갔다가 일본에서 돌아가신 선친을 대신해 하루라도 빨리 가계를 책임져야 하는 3대 독자란 의무감도 컸습니다. 물론 그림을 좋아하고 자유분방했던 성격도 왠지 낭만이 있어 보이는 건축학을 선택하는 데 꽤 작용했고요. 당시 매일신문 사옥에 붙은 서울대 합격자 명단에서 제 이름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 아직 생생합니다."

1970년 직원 1명으로 시작한 희림은 이제 1천 명이 넘는 직원이 일하는 건축설계 및 건설관리(CM)'감리 전문업체로 성장했다. 건설관리는 발주자를 대신해 건설공사에 대한 기획, 타당성조사, 분석, 설계, 조달, 계약, 시공관리, 감리, 평가, 사후관리 등의 업무까지 도맡아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희림은 인재 영입에 적극적인 회사로 정평이 나 있다. 해외 출신을 포함해 건축사'기술사가 각각 100여 명에 이르고, CEO도 입사 후 회사를 비약적으로 성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정영균 대표에게 맡겼다.

"친인척에게 경영권을 물려줄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습니다. 자식들에게도 건축학 전공을 강권하지는 않았지요. 제가 물러나더라도 희림은 언제까지나 이 땅에 남아 아름다운 건축 역사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건축 설계는 결국 사람의 머리와 손으로 이뤄지는 일이기 때문에 인재가 결국 회사의 경쟁력입니다."

이 회장의 호는 인당(仁堂)이다. 그가 태어난 경산 자인면에서 유래됐다. 그만큼 고향에 대한 애정도 깊어 모교인 자인초교에 장학금도 보내고 있다. 지역에도 그의 손길을 거친 작품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안동실내체육관, 경주교육문화회관, 대구경북과학기술원에 이어 대구'김천 혁신도시에 들어설 한국가스공사'한전기술 사옥 및 국립대구과학관, 대구시립미술관 등이다.

"저희 회사를 가리켜 대형 프로젝트에 치중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만 건축의 기본은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건축물은 그 자체가 시민의 재산이자 도심공동체의 구성요소이기 때문에 공공성에도 부합해야 하죠. 앞으로도 사회적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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