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양폭은 가라, 소폭이 대세!…직장인 회식자리 웰빙 바람

확 바뀐 음주문화…소주·맥주 소비 늘고 양주 시들

요즘 직장인·대학생들은 술자리에서 소주 폭탄주를 즐겨마신다.
요즘 직장인·대학생들은 술자리에서 소주 폭탄주를 즐겨마신다.

술 선호도가 바뀌고 있다. 고급 술의 대명사인 위스키 소비량은 크게 줄어든 반면 소주 소비량은 늘어났다. 또 막걸리를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술 소비량의 변화는 달라진 음주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과거 '부어라, 마셔라'로 대변되는 막가파식 음주문화 대신 건전하게 즐기는 음주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술 소비시장에서 토종 술이 강세를 보이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 술자리가 많은 연말을 앞두고 달라진 음주문화를 들여다봤다.

◆양주 지고, 소주 뜬다

지난달 한국주류산업협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주류시장에서 위스키의 약세가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위스키 출고량(1~8월 기준)은 2008년 5천621㎘에서 2009년 3천597㎘, 2010년 2천890㎘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특히 올해 위스키 출고량은 2천321㎘로 2008년에 비해 60%나 감소했다.

반면 경기침체로 한동안 소비가 감소했던 소주와 맥주 출고량은 늘어났다. 올 1∼8월 소주 출고량은 80만9천891㎘로 작년 동기(80만1천150㎘)에 비해 소폭 증가했다. 소주의 경우(1~8월 기준) 2008년 84만7천602㎘에서 2009년 83만1천765㎘, 지난해 80만1천150㎘로 출고량이 감소하다 3년 만에 반등했다.

맥주도 마찬가지다. 올 1∼8월 맥주 출고량은 124만9천799㎘로 작년 같은 기간(121만2천946㎘)보다 3% 늘어났다. 연도별 1∼8월 맥주 출고량은 2008년 127만7천777㎘에서 2009년 124만5천228㎘, 지난해 121만2천946㎘로 줄어들다 올 들어 상승세로 돌아섰다.

◆음주문화에도 웰빙 바람

술 소비량 변화를 두고 주류업계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쏟아지고 있다. 주류업계에서는 3년 만에 소주와 맥주 소비량이 늘어난 원인은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 심리로 회식이나 모임 등이 잦아졌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특히 주류업계는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 심리 상승이 양주 대신 소주와 맥주 소비 증가로 이어진 점에 주목하고 있다. 위스키는 과거 경기 변동의 척도로 여겼지만 독한 술보다 순한 술을 찾는 웰빙형 음주문화로 인해 경기 회복 기대 심리에도 불구하고 위스키 소비가 감소했다는 것.

또 저도주를 찾는 여성들의 기호에 맞춰 알코올 도수를 낮춘 소주제품들이 쏟아져 나온 것도 위스키 소비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알코올 도수 17도 이하 순한 소주의 출고량(상반기 기준)은 2008년 2천852㎘에서 2009년 6천514㎘, 지난해 1만9천851㎘로 매년 2배 이상 증가했다.

몇 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막걸리 열풍도 웰빙형 음주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도수가 낮을 뿐 아니라 유산균이 살아 있고 항암성분까지 함유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막걸리는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먹는 술에서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웰빙술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막걸리가 인기를 끌면서 소비는 꾸준히 늘고 있다. 1인당 막걸리 소비량은 2008년 6.3병에서 2009년 9.1병, 2010년 14.2병으로 증가했다. 또 막걸리 제품도 다양해졌다. 전통적인 쌀막걸리를 비롯해 더덕막걸리, 조껍데기막걸리, 검은콩막걸리 등 이색 막걸리들이 속속 출시돼 애주가들을 유혹하고 있다.

웰빙 바람은 폭탄주를 만드는 방법도 변화시켰다. 과거에는 소주 또는 위스키를 작은 잔에 가득 따른 뒤 맥주도 큰 잔에 부어 이를 섞는 폭탄주 제조법이 유행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소주 또는 위스키를 작은 잔에 반만 따르고 맥주도 큰 잔에 반만 부은 뒤 이를 섞는 것이 일반적인 폭탄주 제조법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폭탄주는 도수도 낮고 양도 적다. 애주가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폭탄주 맛이 싱거워진 것. 폭탄주 제조법의 변화는 조금이라도 술을 적게 마시려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소폭'의 대중화

폭탄주 문화의 변화도 위스키 소비 감소에 일조를 했다는 분석이다. 회식자리에서 '양폭'(양주와 맥주를 섞어 만든 폭탄주)이 지고 '소폭'(소주와 맥주를 섞어 만든 폭탄주)이 인기를 끌면서 소주와 맥주 소비량이 증가했다는 것. 한때 회식자리를 주름잡았던 것은 '양폭'이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애주가들 사이에서는 '양폭'을 마셔야 제대로 된 폭탄을 맞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소폭'이 대세다. 장기간 지속된 경기침체로 인해 얇아진 주머니 사정과 가짜 양주가 많이 유통되면서 양주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것이 '소폭'이 인기를 끌게 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은행원인 박성수(44) 씨는 "회식을 위해 유흥주점에 가더라도 양주 대신 소주를 시켜서 폭탄주를 만들어 먹는다. 가짜 양주가 하도 많아 소주를 먹는 것이 마음 편하기 때문이다. 소주 폭탄주의 경우 양주 폭탄주에 비해 가격도 싸 부담도 덜하다"고 말했다.

또 '소폭'은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 술에서 대학생들도 즐겨 마시는 술로 대중화됐다. 대학가 술집에서 '소폭' 마시는 학생들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학원생인 장지연(25'여) 씨는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지면 자연스럽게 소주와 맥주를 함께 주문한다. 소주에 맥주를 섞으면 도수가 낮아져 마시기가 편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스카치블루'를 판매하는 롯데칠성 관계자는 "양주 대신 소주를 맥주에 섞어 마시는 음주문화가 보편화된 것이 위스키 소비량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달라진 접대문화

접대문화의 변화도 위스키 소비량 감소의 한 원인으로 지적됐다. 유흥업소 결제에 사용할 수 없는 법인카드인 클린카드가 등장하고 리베이트 쌍벌제 도입 등으로 유흥업소 접대에 찬바람이 불면서 위스키 소비를 압박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또 골프가 대중화되면서 술접대 대신 골프 접대가 보편화된 것도 한몫을 했다. 한 기업체 홍보 담당자는 "과거에는 접대 하면 술접대였다. 하지만 요즘 최고의 접대는 골프 접대다. 음주로 몸이 상할 염려도 없고 비용 정산에도 어려움이 없어 접대를 하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모두 골프 접대를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흥업소에서도 소주 판매

위스키 소비 감소로 직격탄을 맞은 곳은 위스키를 주로 판매하는 유흥업소다. 매출이 급감하자 휴'폐업이 속출하고 있는 것. 한국유흥요식업중앙회 대구시지회에 따르면 현재 대구시에서 허가된 유흥업소는 1천300~1천400여 개. 이 가운데 75% 정도만 영업을 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휴업 또는 폐업을 한 상태다. 영업을 하고 있는 유흥업소도 위스키 판매로는 정상적인 운영을 할 수 없어 대부분 소주를 판매하고 있다. 불과 3, 4년 전까지만 해도 유흥업소에서 소주를 마시려면 주인에게 소주를 사 달라고 특별히 부탁을 해야 했다. 소주를 주문하는 특별 부탁은 단골이 아니면 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소주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손님 유치를 위해 자발적으로 소주를 취급하는 유흥업소가 늘어나게 됐다. 김경호 한국유흥요식업중앙회 대구시지회 상임부지회장은 "현재 유흥업소는 2중고를 겪고 있다. 유흥업소는 중과세 대상이기 때문에 과도한 세금을 내고 있다. 게다가 영업까지 부진해 사면초가에 몰려 있다. 어려움을 탈출하기 위한 3년 전부터 소주를 판매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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