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 제품의 반값 6개월간 A/S 똑똑한 가전 쇼핑…칠성 중고가전골목

깨끗하게 수리된 중고전자제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만나볼 수 있는
깨끗하게 수리된 중고전자제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만나볼 수 있는 '칠성 중고가전골목'.

"중고제품도 잘 고쳐서 팔면 새 제품 못지않죠"

칠성시장에서 경대교 방향으로 나가다 보면 길 양쪽으로 가전제품 행렬이 등장한다. 곳곳에서는 상인들이 가전제품을 고치고 닦는 모습이 연출되고 사람 키만큼이나 쌓여 있는 냉장고, TV, 컴퓨터, 난로 등 종류도 다양한 중고가전제품을 만날 수 있는 이곳이 '칠성 중고가전골목'이다.

◆150여 개 중고전자제품 가게가 한곳에

이곳에 중고가전 상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30여 년 전부터다. 원래 칠성시장 인근에는 중고가전제품을 취급하는 가게들이 많았는데 처음에 자연발생적으로 모였던 곳은 '푸른다리'라 불렸던 신천철교 인근이었다.

당시에는 기차가 대구에 도착하면 한눈에 보이는 곳이 푸른다리 근처 중고가전 상가였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30여 년 전 하나 둘 중고가전 가게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푸른다리 근처에서 중고가전 가게를 했다는 한 상인은 "기억하기로는 지방자치단체에서 계획적으로 중고가전 가게들을 옮겼었다"며 "다른 지역 사람들이 대구에 들어와서 처음 보게 되는 광경인데 중고가전제품이 줄줄이 쌓여있는 건 흉물스럽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푸른다리를 떠난 상인들이 모여든 곳이 지금의 골목이다. 예전에는 푸른다리 외에도 침산동에 중고가전 가게들이 소복이 모여 있었지만 문을 닫거나 칠성시장 쪽으로 옮겨 지금은 칠성중고가전골목이 유일하다.

여기저기 퍼져 있던 가게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서 삼성시장과 삼성시장 건너편 큰길과 골목, 경대교까지 이어지는 길을 따라 150여 군데의 가게가 빼곡히 들어서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일반 가전제품뿐 아니라 식당영업용 주방전자제품을 취급하는 가게들도 많다. 전체 가게 중 중고가전제품이 60%, 주방전자제품이 40%가량을 차지한다. 상인들은 "대구에서 음식장사 하는 사람치고 여기서 물건 안 사가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주방전자제품의 경우 일부 새 제품도 취급하고 있지만 요즘은 물가가 워낙 비싸다 보니 대부분 중고제품을 찾는다"고 말했다.

◆최대 90% 이상 저렴한 중고가전제품

골목에 있는 중고가전제품의 가격은 보통이 새것의 반값 수준이다. 제품이 출시된 지 오래되거나 오염이 있을 경우에는 90% 이상 저렴한 것도 있다. 물건이 부실한 것도 아니다. 상인들이 눈으로 보고 구입한 중고제품을 수리하고 깨끗하게 닦아 새것 못지않은 물건들이 대부분이다. 고장 난 곳을 고치고 새 단장한 채로 비닐이 씌워져 있는 물건을 보고 손님들이 "이건 새 제품이에요?"라고 물을 정도다.

예전보다 전자제품 교체주기가 빨라지면서 기능과 겉모습뿐 아니라 실제로 새것과 다름없는 제품들도 골목에 나온다. 출시된 지 1, 2년이 채 안 된 드럼세탁기나 LED TV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중고가전 유통을 전문으로 하는 가게도 있지만 상인들이 기계 수리를 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웬만한 물건들은 직접 고친다. 심하게 고장 난 제품들도 골목의 '수리의 달인'들을 만나면 새것 못지않게 변한다. 수리를 전문으로 하는 한 상인은 "부속을 갈고 쌓인 먼지를 깨끗하게 닦아 내면 내구성은 새 제품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가게들이 사간 뒤 6개월간 A/S도 보장해준다. 저렴한 가격에 A/S도 해주다 보니 알뜰 쇼핑을 원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고물가로 서민형편이 어려워지면 오히려 골목은 활기를 띤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자취생들도 이곳을 많이 찾는다. 심지어는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신혼부부들이 알뜰한 살림 장만을 위해 골목을 방문하기도 한다.

골목에 온열기를 사러왔다는 조미경(38'여) 씨는 "물건이 워낙 깨끗한데다 6개월 동안 A/S가 된다는 스티커도 붙어있어 마음 놓고 샀다"며 "가격은 새 제품의 절반도 안 줬으니 제대로 알뜰 쇼핑한 셈"이라고 말했다.

골목상인들은 물건의 소중함을 안다. 상인들은 "워낙 빠르게 나오는 신제품에 현혹돼 새 물건만을 찾거나 고장 났다고 금방 물건을 버리기보다는 고쳐서 써야 한다"며 "중고제품도 잘 닦고 잘 고치면 새 제품만큼 좋다는 걸 소비자들이 알아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김봄이기자 bom@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