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라는 말을 하면 남북의 이산가족이 먼저 생각나기에 한평생 애타게 기다리는 그 아픔이 망향가 되어 눈시울을 적신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했던가? 집의 방에는 1990년에 찍은 14장의 고향마을 사진이 액자로 걸려 있다. 고향을 모르는 자식들에게 아비의 고향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태어나고 자란 고향마을은 대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경산 남산 조곡리로 상대온천 입구 못 미쳐 좌측으로 난 길을 따라 두 고개를 넘으면 되고, 남산면 소재지에서는 오리 길을 가야 하며 청도군과 산을 경계로 둔 골짝마을이다.
가을이 깊어 가면 조상들의 산소를 찾아 묘제를 지내기에 문중이나 파중의 유사가 연락이 오고 준비사항도 전달받는다. 가을마무리가 끝이 나면서 고향 일족들과 종손 역시 객지에 나가 사는 이들이 묘제에 오기를 바라기에 받은 부탁을 소홀히 할 수 없다. 어릴 당시에는 묘제 지낸 떡을 얻어먹는다고 온 마을 아이들이 줄을 지어 앉았으나 이제는 세월 따라 없어진 일이 되어 묘제는 한적하다.
태어나서 초등학교 졸업을 하기까지 살았던 고향은 옛 모습과 겪은 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잊혀지지 않는 일들이 많기도 하다. 지난날의 마을은 김녕 김씨와 탐진 안씨들이 주가 된 두 성씨의 집성촌이며 조곡리(早谷里)는 다른 이름으로는 '이리실'이라고도 불렸다. 분지형의 자연부락은 아랫마을(점마을), 중간마을(이리실), 윗마을(새마을)의 세 곳으로 나뉘어 있어 모두를 합하면 당시는 120여 호나 되는 큰 마을이어서 같은 또래 마을 동기가 남녀 16명이나 돼 집성촌 특유의 계촌 관계를 어릴 때부터 익혀왔기에 동갑내기 동기라도 함부로 이름만을 부르지는 못하였다. 나의 위치는 촌수가 낮아 아장거리며 걷는 아기도 할아버지뻘이 되기에 계촌은 언제나 손해를 본다고 어린 마음에 싫어했다.
고향을 떠나온 9명이 대구에서 오랜 만남을 이어온다. 60중반의 나이에도 어느 한 친구도 안경을 착용하지 않고 생활하기에 공통성을 자랑으로 삼는데, 누구는 공부를 하지 않았으니 그렇지 하고 자랑거리가 아님을 농담으로 빈정대기도 하지만 고향마을의 맑은 물과 신선한 공기, 산천의 녹색을 늘 보며 자란 혜택으로 모두가 여긴다.
지난날의 농촌은 먹고사는 일에 많은 고생을 했는데 산이 더 많은 관계로 어려운 살림살이에 어머니는 고생으로 6남매를 키우셨다. 그 까닭은 아버지께서 일제강점기에 징용을 당해 탄광에서 막장일을 하셨고 해방을 맞아 귀국은 하였으나 병만 나서 돌아오셨기에 농사일을 원활히 못해 가세가 많이도 어려웠고, 할아버지마저 중풍으로 몸져누우시니 어머니의 고생은 더욱 힘겨우셨다. 이 어려운 틈에 나는 설사병을 오래 앓아 죽는 줄 알고 이불을 덮어둔 이야기를 대학생이 되었을 때 어머니께서 들려주셨다. 당시 형편으로는 늘 자연만을 접하며 자란 탓에 어쩌다 마을에 차가 오면 무척이나 궁금해 자세히 살펴보는 습관이 어릴 때에 길러졌다. 6'25가 이어지는 동안은 군대에 간 마을 사람들이 가끔씩 총을 휴대하고 와서 노루나 토끼를 소총으로 사냥하는 일이 있었다. 이때 아이들을 동원해 몰이꾼으로 삼았기에 몇 번 따라다닌 한 날은 총 쏘는 방법을 뒷등 솔숲에서 배운 일이 있다. 초등학교 입학 전이었는데 개머리판을 배에다 대고 방아쇠를 당기게 했는데 시키는 대로 1발씩을 쏘았다. 지금 생각하면 위험천만한 일로 놀랄 일이지만 당시 아이들은 놀잇감도 단연 탄알이나 탄피였고 군대 흉내를 냈으며 가르쳐 주는 군가도 열심히 따라 불렀다.
산골이라 숨어든 공산군들이 투항해 마을 숲에 묶어두면 경찰들이 다시 묶어 데리고 가는 일도 보았는데 더운 여름인데도 누비 군복을 입고 있었다. 안개가 자욱한 여름날 비행기 사고가 났다. 전투기의 동체는 이웃마을에 떨어지고 조종사는 마을 양골에 내려앉아 큰 구경거리가 생겼다. 낫을 든 마을 사람들에게 인도되어 이장집의 사랑방에 구조대가 올 때까지 있게 된 코쟁이 조종사를 본다고 이장 집은 붐비었다. 타고 내린 낙하산은 이장 집 마당에 펼쳐두고 낫으로 갈기갈기 베어 집집마다 나누었는데 어른들의 담배쌈지 끈은 낙하산 나일론 줄로 모두 바뀌었고, 미군 조종사를 처음 보는 것도 신기하고, 들판에 떨어진 조종사 헬멧은 더욱 신기했다.
어느 한 해는 밀 보리가 익을 무렵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날 사발이 트럭이 마을에 와서 지정한 사람을 찍어주면 차도 태워주고 점심국밥도 대접한다고 알린다. 문맹자들을 위해 나뭇가지를 꺾어 기호 막대기 수만큼의 자리에 찍어 달라고도 한다. 차를 타보지 못한 나를 어머니께서 데리고 트럭에 올랐다. 한껏 사람을 태운 트럭은 마을 숲을 출발하여 얼마 못 가 논바닥으로 떨어졌다. 비명소리가 여기저기 높은 가운데 겨우 비집고 나오니 머리에서는 피가 마구 흐른다. 트럭이 옆으로 처박혀 그렇지 뒤집어졌다면 어린 나는 죽었을 것이다. 그날 다친 사람은 많아도 죽은 사람은 없기에 살았다는 생각에 울 수도 없었다. 못자리 물에다 피투성이 머리와 얼굴을 씻고 집에서 된장을 바르는 것으로 치료가 끝이 났으며 흉터가 졌기에 고향 마을에 들를 때마다 처음 탄 트럭에 죽을 뻔한 차 사고는 평생 잊지 못할 일이 되었다.
아랫마을(점마을)은 옹기를 만들고 굽는 장인들의 마을이었다. 호기심이 많은 나로서는 큰 관심을 가져 그 과정을 세세히 살폈다. 당시 흙은 자인에서 말 구루마를 이용하여 늘 실어 날랐고 흙이 반죽되어 물레에서 그릇이나 옹기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며, 굴에다 구울 그릇들을 차곡차곡 쌓는 모습이며, 화목으로 불을 여러 날 때는 것까지 자주 찾아 구경을 했다. 그때의 옹기 굴은 지금은 없어졌는데 보존을 했더라면 소중한 유산이 되었으리라.
마을의 숲 앞에는 비각이 있고 안에는 비문이 새겨진 비석이 있다. 아래쪽으로는 느티나무가 가로로 서 있어 비보림의 역할을 하고, 마을 숲에는 동제를 지내며 당산지임을 나타내는 입석(立石)도 있다. 이 비각은 안지(安止) 선생(1377~1464)의 신도비로 그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1914년에 세웠으며 호는 고은, 시호는 문정이다. 세종 때 집현전 대제학으로 용비어천가를 찬술한 학자로 1416년 문과에 급제해 집현전 부제학, 공조판서, 영중추원사를 지냈다. 시를 잘 짓고 해서를 잘 쓰므로 세종이 태종을 위하여 금자법화경을 안지 선생에게 옮겨 쓰게 하였고, 1445년 왕명을 받들어 권제, 정인지 등과 함께 최초로 한글 용비어천가를 지은 당대의 큰 학자로 세종의 총애를 받았으며 선생의 고조(高祖) 되는 문충공 안우와 함께 조곡서원에 모시고 유림에서는 향사를 받들고 있기에 지역의 존경을 받는 자랑스러운 인물임을 알리는 비석이며 비각이다.
태어나고 자란 고향은 일생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산이 있고, 저수지가 있고, 논밭이 있고, 하천이 있는 관계로 자연공부의 보고였다. 산천을 헤집고 다닌 체험은 지금까지 나를 동식물에 집착을 갖게 영향을 미치니 자연만큼 큰 스승이 어디 있으랴 싶다. 대구교대를 졸업하여 40년의 교직을 마치고 지금은 숲 생태해설가로 활동을 하며 7년간이나 나무와 풀에 대한 글(edu.imaeil.com)을 써오는 것도 근본은 고향의 다양하고 풍부한 자연생태를 보고 익힌 때문이다.
예로부터 3성현이 태어난 곳으로 유명한 경산은 원효대사와 그 아들 설총, 삼국유사의 일연선사 역사문화공원을 남산면 인흥리에 조성하기에 고향을 알리는 반가운 일이며 선현의 얼을 익히는 학습 장소로 명소가 되리라 여겨 공사현장을 답사도 하였다.
세상이 많이도 변한 것 중에는 농촌학교의 폐교 문제와 취학아동 감소가 있는데 2개교가 문을 닫았고 이대로 간다면 모교인 경산 남산초등학교마저도 위태로운 상황에서 교육청은 자율학교로 지정을 하고 학교장도 초빙을 하여 가고 싶은 학교로 모습을 일신한 결과 30명이나 전학을 왔기에 올해의 모교 총동창회체육대회는 축제 분위기였으며 고향 만세를 힘차게 부른 모교의 운동장은 힘이 실려 있었다.
내 고향 경산은 대구의 가장 큰 배후 도시다. 도시철도 2호선 연장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아마 완공이 되면 생활권이 대구로 바로 이어지기에 도시로의 발전 가속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지역의 산업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저수지 수와 대학교의 수가 전국에서 제일 많다고 알려진 경산은 편리한 교통, 높은 농가 소득, 쾌적한 교육도시로 발전의 날개를 달고 있다.
김상기 대구생명의 숲 해설가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