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이만수

이만수는 대구를 대표하는 야구선수였다. 팬들은 포수 마스크를 벗어들고 "삼성 파이팅"이라고 외치며 홈런을 펑펑 쏘아 올리는 모습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곤 했다. 1980, 90년대에는 야구장에 가자는 말이 '만수, 보러 가자'고 할 정도였으니 그의 스타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위대한 선수'와 '자기중심적인 인간' 사이에서 갈등하곤 했다. 필자가 1993년 야구 담당을 할 때 삼성 선수에게 들은 얘기가 기억난다. "만수 형은 50년 만에 한 명 날까 말까 한 훌륭한 포수예요. 그렇지만 인간적인 면모는 '글쎄요'입니다." 이만수 선수와 딱 한 번 식사를 한 적이 있다. 그 사실을 아는 선수들에게 얘기했더니 대부분 적이 놀라는 눈치였다. 그만큼 그는 동료들에게도 아량을 베풀지 않았고 구두쇠로 소문나 있었다. 그가 어려운 상황에 있었기에 기자와 식사를 했으리라 짐작된다. 홈런 20개를 친 전해와 달리 그해에는 5개에 그치며 내리막을 걷고 있었다.

결국 그는 삼성에 버림을 받았다. 은퇴식도 없이 선수 생활을 끝냈다. 프랜차이즈 스타를 감싸 안지 못한 구단의 잘못이 더 크지만,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아쉬워하지 않는 듯했다. 팬들은 무척 좋아했지만, 주위 사람들에게는 인기 없는 선수였다. 지난 8월 SK가 김성근 감독을 퇴진시킨 후, 이만수 감독대행이 기자회견을 갖는 것을 보며 내심 걱정했다. 과거 눈치 없이 행동했다가 낭패를 당한 적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대구상고 시절 전국대회에서 생애 첫 홈런을 치고는 너무 즐거워했다가 시합이 끝난 후 선배들에게 크게 혼났어요. 경기에서 지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요."

며칠 전에 끝난 한국시리즈에서 이 감독대행을 오랜만에 볼 수 있었다. 경기 중 시시각각 변하는 그의 표정을 보고는 안타까웠다. 초조, 불안감에 표정이 어두웠고 찌푸려져 있었다. 예전에 대구야구장에서 보여줬던 쾌활하고 파이팅 넘치는 모습을 떠올리니 더욱 그랬다. 이제 대행 딱지를 떼고 정식 감독이 됐다고 하니 다행스럽다. "시합에 진 것은 감독인 내 탓"이라고 말했다는 소식까지 들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쫓겨나다시피 고향을 떠나 미국 땅에서 혹독한 고생을 했으니 분명히 예전과는 다를 것이고, 자신에 대해서도 돌아봤지 않겠는가. 이만수 감독의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빈다.

박병선 동부지역본부장 l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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