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분명히 거기 있는 것

며칠 전만 해도 노랗게 달려 있던 은행잎이 어느새 떨어져 아스팔드 위가 온통 황금빛이다. 저토록 완벽한 빛깔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잠시 차를 세우고 황홀한 빛에 취해 있는데 젊은 부부 한 쌍이 은행잎을 배경으로 어린아이의 사진을 찍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 인형같이 예쁜 아이에게 엄마 아빠는 열심히 포즈에 대한 설명을 하고 아이는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카메라 앞에서 천진하게 웃는다. 이런 모습은 가을에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광경이지만 몇 컷의 사진을 찍은 후 아이를 안고 돌아가는 젊은 가족들을 보면서 행복은 바로 저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인생의 반을 살고도 아직도 화두처럼 붙잡고 놓지 못하는 행복은 과연 어떤 것인가? 아마도 우리의 불행은 행복했던 그 순간들을 잊어버리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이솝 우화에 나오는 행복방정식을 보면 불행은 힘이 세고 행복은 힘이 약해 불행이 행복을 만나기만 하면 온갖 행패를 부리는 바람에 이를 피해 행복은 모두 하늘로 피신해 버렸다. 이에 제우스신은 너희들이 행패를 당하지 않은 것은 좋으나 너희를 목마르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가엾으니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세상으로 내려가라 했다. 그래서 세상은 불행뿐이고 행복은 보이지 않는다 했다.

신은 누구에게나 행복과 불행을 공평하게 나누어 주지는 않았지만 어느 한 사람에게 불행만을 안겨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행복했던 순간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하루 평균 40여 명이 넘는 사람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나라, OECD 국가 중 1위라는 부끄러운 자살 통계자료를 보면서도 왜 자살이 계속 늘어나는지에 대한 실증적 자료와 자살 방지 연구기관과 전문가도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특히 10~30대까지의 사망 원인이 질병이 아닌 자살이 1위라는 사실은 너무나 안타깝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상태'라고 되어 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열심히 추구하고 있는 돈이나 명예 등을 손에 넣었을 때 느끼는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은 마치 정상에 오르자마자 떨어져 다시 밀어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의 돌처럼 우리를 고통 속에 빠뜨릴 수 있다. 그 한 예를 보면 우리가 수시로 보아왔던 인기 연예인이나 유명인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명예나 부, 인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목숨을 버리는 극단적인 비극 속으로 빠지는 것이다. 행복의 가장 큰 장애는 너무 지나친 행복을 기대하는 것이라 했던가.

가을이 가고 있다. 산빛, 들빛, 저물녘 노을이 너무도 곱다. 저 눈부신 배경 속에 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더없이 행복해야 한다. 행복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우리들을 위해 제우스가 하늘에서 은밀히 내려 보낸 행복은 바로 나의 것이니까.

황영숙 시인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