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벽안개 낀 풍광… 청송 주왕산 주산지 가을 풍경

왕버드나무 수령 다 돼 10여그루만 남아…새 나무는 못 살아 '1번'

수중 왕버드나무들이 사라지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는 주산지의 늦가을 아름다운 풍경.
수중 왕버드나무들이 사라지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는 주산지의 늦가을 아름다운 풍경.
수면을 기준으로 절묘하게 상하 대칭을 이루고 있는 수중 왕버드나무.
수면을 기준으로 절묘하게 상하 대칭을 이루고 있는 수중 왕버드나무.
주산지 전망대에서 기분 좋게 단체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들. 밝은 표정의 이들과 주산지 늦가을 풍경이 대비된다.
주산지 전망대에서 기분 좋게 단체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들. 밝은 표정의 이들과 주산지 늦가을 풍경이 대비된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주산지, 가을 풍경

'아름다운 주산지, 그래서 더 안타까운….'

대한민국에서 새벽 안개가 낀 풍광이 아름다운 3대 저수지 중 첫째가 경북 청송 주왕산 주산지다. 둘째는 전남 화순의 세랑지, 셋째가 충남 서산의 용비지다. 올해 전문 사진작가들이 선정한 아름다운 저수지 순위다. 실제로 그렇다. 이 세 곳은 사진으로 보면 더 아름다울지 모른다. 그래서 열정적인 사진작가들은 그 풍경을 찍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카메라를 들고 이들 저수지를 찾아 떠난다.

'태곳적 신비로움을 간직한 주산지, 수채화 같은 풍경의 세랑지, 깔끔한 전경의 용비지' 3대 저수지의 특징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세 곳 다 가 볼 여력이 없었던 탓에 지역의 명소인 청송 주산지를 찾아 떠났다. 늦가을 풍경이 마음을 가라앉혀서 그런지 '슬프도록 아름답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막상 가서 보니 슬퍼지는 이유는 또 있었다. 주산지 내 왕버드나무가 최근 몇 년 새 많이 죽어 현재는 10그루 남짓 남아서 늦가을 정취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 10그루도 이젠 수명이 다 됐다. 이 저수지에 뿌리를 내리고 자생해 온, 이 나무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면 특별함이 없는 평범한 저수지가 될지도 모른다. 향후 수 년간은 주산지에 가면 이들 10그루의 나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후가 문제다. 7일 주산지를 향해 무작정 떠났다.

◆'자연을 노래하다, 청송', 촌스럽다(?)

대구 도심 한복판에서 주산지를 향해 떠났다. 내비게이션에 130㎞ 정도의 거리가 찍힌다. 하지만 소요시간은 2시간 30분으로 나타났다. "아하! 가는 길이 순탄치 않구나." 내비게이션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일단 북대구 IC를 통해 대구를 빠져나갔다. 대구-포항 고속도로를 타고 영천쯤에서 빠져나가 북쪽으로 올라갔다. 고속도로를 나오니 주산지까지 꼬부랑 길이다. 그래서 소요시간이 1시간가량 더 걸린다.

영천에서 청송 주산지로 향하는 길은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만끽하기에 딱 좋다. 서울특별시 면적보다 크지만 인구는 서울의 한 동네보다 적다. 3만 명이 되지 않으며, 매년 수백 명씩 줄고 있는 실정이다. 개발이란 단어가 적합하지 않은 청정자연 청송군이다. 없는 것이 참 많다. 고층빌딩이 없으며, 그 흔한 골프장도 없다. 단란주점은 있지만 룸살롱도 없는 곳이다. 영화관이나 공연장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행복한 곳이다. 30년 전으로 돌아가는 추억여행의 장소로도 적합하다. 샛노란 은행나무가 마을 어귀를 지키고 있는 곳, 탐스러운 사과가 주렁주렁 열린 농장, 손바닥만 한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아이들, 순수 우리말 간판(뿅뿅 식당, 목터져라 단란주점, 까꼬아뽀까 미용실 등) 등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마음이 급하지 않다면 늦가을 주변 풍경도 즐기면서 가면 좋다. 창문은 반드시 열어야 한다. 청정한 공기의 신선한 기운을 맘껏 마시면서 달리면 건강에도 좋을 듯했다. 노란색, 연두색, 초록색, 갈색, 다홍색 등 다채로운 원색으로 물든 가을 산은 드라이버의 기분을 한껏 업(Up)시켜준다.

◆주산지의 늦가을 풍경이란…

정확히 2시간 10분 걸렸다. 주산지 입구 주차장에 도착했다. 평일이었지만 주산지를 보러 온 계모임 주부들, 단합대회를 하러 온 직장인들,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넘쳐났다. 지난 주말에는 4만 명이 주왕산을 다녀갔다고 한다. 10여 분 걸어 올라가니 드디어 주산지다.

100년을 훌쩍 넘은 고목들이 저수지 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마치 공룡이 나오던 시절을 연상시키며 묘한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었다. 물속에 비친 고목들은 수면을 기준으로 정확하게 상하 대칭이 이뤄져, 데칼코마니 미술작품을 연상시켰다. 앙상하게 가지만 남아 있었지만 그 계절적 아름다움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변 풍경이 아름다워서 그런지 주산지의 안타까운 상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 나무도 죽었고, 저 나무도 죽었고' '어! 우리 집 연못보다 조금 더 크네' 등의 얘기들이 들려온다. 주왕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관계자의 설명은 이 아름다운 저수지의 미래를 더 어둡게 했다.

"왕버드나무들이 수령이 다 돼서, 죽어가는 것을 인위적으로 막을 수가 없습니다. 새 나무를 저수지 바닥에 심어봤지만 모두 3개월도 되지 않아 죽어버렸습니다. 청송군에서 연구를 거듭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뾰족한 대책조차 없습니다."

조선 숙종 때(1720년) 계곡에 둑을 쌓기 시작해 생겨난 주산지. 그리고 그 계곡에 살고 있던 왕버드나무는 물속에서도 꿋꿋하게 생명력을 이어가 오늘날에 이르렀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30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었는데 이젠 3분의 1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대한민국 3대 저수지 중 으뜸인 주산지가 그 모습을 계속 유지할 묘안이 없을까?

글'사진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Tip>주산지로 갈 때는 대구-포항 고속도로를 거쳐 국도를 타고 청정지역 청송의 늦가을 풍경을 만끽하면서 주왕산으로 향한다. 대구로 돌아오는 길에는 안동-의성을 거쳐 중앙고속도로를 통해 오면 더 빠르고 좋다. 주산지 구경이 끝나면 달기 약수터에 가서 철분이 든 약수를 한 모금 들이켜고, 인근에서 특미 닭백숙을 먹으면 눈뿐 아니라 입도 호강한다. 최근엔 청송군 특미 산채비빕밥 전문식당도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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