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수능시험

내일은 201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날이다. 수험생과 학부모의 휴대전화 시작 화면에 D-Day라고 찍히는 바로 그날이다. 올해 수험생은 69만 3천634명이다. 지난해보다는 1만 8천여 명이 줄었지만 아직 어마어마한 숫자다. 4인 가족 기준으로 본다면 270여만 명이 수험생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여기에다 친인척이나 학교, 학원의 선생님까지 더하면, 국민 대다수가 내일 하루 시험에 마음을 졸이는 셈이다.

수능일이 다가오면 수험생 집안은 초긴장 상태다. 모든 생활 리듬을 수험생에 맞추고, 예민한 수험생 때문에 발소리도 죽인다. 돌이켜보면 대입에 목매 몇 년을 고생한 아이가 애처롭고, 사교육비에 허덕인 지난 세월이 서럽다. 수능시험이 인생을 좌우하지 않는다고 아무리 되뇌어도 답답함은 가시지 않는다. 이쯤이면 아이를 공부 기계로 내모는 정부의 입시 정책과 학력 지상주의 사회를 원망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저녁, 수험생과 가족의 초조함은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이다. 좀 더 시간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과 후딱 지나가 버리면 좋겠다는 마음이 엇갈리기도 한다. 한 발짝 물러서 조금만 길게, 넓게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미 모든 여유는 수능시험 뒤로 미뤄둔 터다. 물론, 수능시험이 끝나도 대학입시 전쟁은 계속된다. 수시 논술 시험이 남아 있고, 정시에서는 대학 선택을 두고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그래도 팽팽한 긴장감의 무게는 수능시험 때와 많이 다르다.

채근담(菜根譚)에 '풍래소죽 풍과이죽불류성(風來疎竹 風過而竹不留聲) 안도한담 안거이담불류영(雁渡寒潭 雁去而潭不留影)'이라는 구절이 있다. '성긴 대숲에 바람이 불어도 바람이 지나가면 대나무는 바람 소리를 남기지 않고, 차가운 못 위로 기러기가 날아도 기러기가 가고 나면 못은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군자(君子)의 마음가짐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이 구절처럼 수능시험이 끝나는 내일 저녁에는 모든 수험생과 가족이 지나간 시험을 마음 바깥으로 훌훌 털어내 잊었으면 좋겠다. 특히 수험생은 그동안 공부에 시달리느라 하지 못한 여러 일을 차근차근 꺼내 미래를 계획하고, 현재를 마음껏 즐기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대입 정책 아래에서 피를 말리는 시간을 무사히 보낸 모든 수험생과 가족에게 박수를 보낸다.

정지화 논설위원 akfmcp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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