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산사랑 산사람] 고창 구황봉'비학산

한국의 작은 그랜드캐니언'호남의 공룡능선

해발 300여m에 불과하지만 '명품등산로' 반열에 든 산줄기가 있다. 한국의 작은 그랜드캐니언, 작은 공룡능선이라 부르기도 한다. 낮지만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다. 롤러코스터 산행으로 이름을 얻기 시작했다. 기암과 바위, 육산이 혼합된 산, 산세는 높지 않으나 아기자기하다. 바위 전시장을 방불케 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외형상으로 드러나는 고도(高度)만 믿고 종주에 나섰다가 혼쭐이 나기 일쑤다. 그동안 무명능선이었으나 전문 산지에 소개되면서 앙팡진 산세로 서서히 이름이 알려지고 있는 중이다. '구름 속에 누워 선도를 닦는다'는 의미의 선운산(도솔산)도립공원 속 산의 일부지만, 이제는 구황봉(298m), 비학산(307.4m), 사자바위 능선이라는 단독 브랜드로 그 이름을 각인시키고 있다.

◆삼인조각공원-구황봉-비학산-사자바위코스 인기=산행의 들머리는 선운산도립공원 주차장 못 미쳐 삼인조각공원. 입구에 할매풍천장어와 정자나무집이 있다. 100여m를 들어가면 폐교를 개량해 만든 운동장에 다양한 조각상과 문학비가 세워져 있다. 공원 좌측 산비탈에 등산로 입구가 보이고 5분이면 주 능선에 올라서게 된다.

주 등산로를 25분여 오르내리면 고만고만한 봉우리 2개가 반긴다. 형제봉 동봉과 서봉이다. 노적봉 가는 길은 산죽 길이다. 야산 분위기에 답답할 만큼 주변이 막혀 경치가 없다. 지루한 길은 구황봉까지 내내 이어지고 오르내림이 만만찮아 제법 땀을 흘리게 된다.

구황봉을 지나 마당바위에 다다르면 비로소 조망이 좋아진다. 좌측 능선 아래로 벌바위와 형제바위가 보이고 그 너머로 반암리의 논과 들녘이 훤하다. 고창 일대의 대표적 기암인 병바위가 원거리인데도 단번에 눈을 사로잡는다. 가야 할 능선에는 선바위가 초록 사이로 뿔처럼 혼자 솟아있다. 북쪽으로는 경수산(444m)과 선운사가 뚜렷하다.

한참을 내려서니 인경봉과 구황봉 사이 안부삼거리. 낭패를 당하기 쉬운 곳으로 주의해야 할 지점이다. 오른쪽 등산로로 접어들면 안 된다. 도솔제로 뚝 떨어져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하게 된다. 왼편으로 휘어지는 길을 따라야 정상적인 등산로다.

안장바위를 오르면서 이제야 바위산에 온 게 실감난다. 병풍바위 주변은 고도감 있는 바위능선이라 아찔한 스릴도 동반한다. 주변 조망이 뛰어나다. 우측에는 선운산에서 제일 큰 저수지인 도솔제와 컬러풀한 사자바위 능선이 전경을 펼치고, 그 너머에 배맨바위와 천마봉, 낙조대가 보인다. 뒤돌아서면 병풍바위와 구암저수지, 벌바위, 형제바위, 소요산이 차례로 시선을 끈다.

주변에 기암괴석의 산줄기가 주 능선보다 더 높게 능선을 곧추세운다. 병풍바위를 통과한 지 50여분 만에 비학산에 도착한다. 200m대를 오르내렸던 능선이 처음으로 300m대를 돌파한다. 헬기장인 비학산 정상에는 표지석은 없고 나무의 잔해가 어지럽다. 희여재 내림 길이 다소 가파르다. 고도가 100m대로 뚝 떨어진다. 마지막 탈출로라 초보 산꾼들은 여기서 갈등하게 된다.

◆아찔한 절벽 비껴 멀리 변산반도 아련히=뚝 떨어진 고도를 회복하려니 무척 힘이 든다. 산 중턱부터 왼편은 절벽이다.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사자바위가 돋보이고 경수산과 변산반도가 아련하다. 바위전망대에서 땀을 훔치면서 바라보니 건너편 쥐바위봉이 철옹성이다. 꼭대기에는 한 쌍의 산객이 멋진 포즈로 조망을 즐기고 있다.

드디어 최고봉인 336m봉! 주변의 쥐바위봉에 위축되어 이름조차도 얻지 못했다. 갈림길에 이정표(청룡산 1㎞'희여재 1㎞'사자암 1㎞)가 세워져 있다. 청룡산과 사자바위, 희여재의 정중앙지점이라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사자바위로 가는 능선 길과 사자바위봉에서의 조망은 환상 그 자체다. 신선들만이 누릴 수 있는 선경이라고나 할까. 호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이라는 찬사가 전혀 무색하지 않다.

도솔암 주변의 기암과 오색이 감미롭게 뒤섞인 단풍도 압권이다. 배맨바위와 낙조대, 천마봉 주변의 암벽미도 탁월하고 넘어야 할 투구봉과 선운사, 그 뒤쪽 곰소만과 변산반도의 산줄기가 파노라마를 그린다.

암벽등반의 보고(寶庫)라는 투구바위가 마지막 봉우리다. 15분이면 매점이 있는 선운계곡에 도착하게 된다. 선운계곡의 단풍 길은 11월 둘째 주까지가 절정이다. 미당 서정주의 시와 송창식의 노래로 유명한 선운사는 마지막 볼거리다. 사천왕상의 발밑에 놓인 요부상의 표정은 기묘하다 못해 사람의 마음을 헤집는다. 꼭 한 번 살펴볼 것을 권한다.

◆15㎞완주에 5시간 소요…하산주는 복분자술=주차장에 도착하니 수많은 차량과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주변에 풍천장어 집이 즐비하다. 총 15㎞에 달하는 등산로를 완주하고 나니 왠지 뿌듯해진다.

등산시간은 5시간을 상회한다. 초보자에게는 다소 무리일 수도 있겠지만 중간에 3군데 정도의 탈출로가 있어 코스에 대한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 산의 수는 4천440여 개에 달한다. 등산로만 수만 개가 넘는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등산로 중에서도 '명산명품 등산로' 라는 수식어가 통용되는 멋진 등산로는 흔하지 않다.

물론 사람에 따라 그 기준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구황봉-비학산-사자바위 능선종주는 그 범주에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는 산이라고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

산행 뒤풀이를 위해 식당으로 향한다. 선운산의 3대 명물인 풍천장어와 복분자를 맛보기 위해서다. 미리 등산을 마치고 자리를 잡고 있던 산악회의 선배가 한마디를 툭 던진다.

"어이 지 대장! 이 코스 정말 멋진 환상적 코스네. 같이 했던 파트너는 조금 힘들었지만 나한테는 정말 딱 맞는 코스네."

1대간 9정맥의 산줄기를 누빈 그가 극찬을 쏟아낸다. 좋은 코스 소개해 줘서 고맙다고 복분자 술 2병을 부상(?)으로 건네준다.

글'사진 지홍석(수필가'산정산악회장) san32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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