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뮤직토크(51)] 시나위(하)

대중음악 다양성 기여한 아티스트 배출

시나위의 데뷔 앨범은 레코딩 기술의 혁신적인 발전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대중음악 스타일을 여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이 끝나면서 사회전반에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높아졌고 대중문화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었다. 특히 검열과 규제의 직접적인 대상이던 대중음악계는 새로운 변화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기존의 TV무대가 댄스음악과 트로트, 발라드가 주류 음악이었다면 라디오와 언더그라운드에서는 록음악이 대세로 등장하게 된다. 이들은 포크록 지향의 언더그라운드 집단과 헤비메탈 집단으로 구분되는데 헤비메탈 집단은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그동안 없었던 모습이었다.

헤비메탈 집단은 일본 등을 통해 유입된 록 문화에 심취한 세대였는데 록음악을 다루던 음악잡지와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은 이들에게 음악적 자양분을 공급했다. 또 당시 음악감상실에서는 해외 록스타들의 공연 실황을 뮤직비디오로 틀어주는 일이 흔했는데 이 또한 록 문화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문화를 통해 생겨난 록키드들은 1980년대 중반 서울 종로3가에 있었던 파고다극장을 중심으로 라이브 무대를 가졌다. '혼'이나 '뮤즈에로스' 같은 팀을 중심으로 '메탈 프로젝트'라는 모임이 생기기도 했고 수많은 밴드들이 등장해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했다. 이 시기 음반기획자들도 록음악에 관심을 보였고 이 가운데 탁월한 실력을 보여 주던 '시나위'가 먼저 앨범을 내게 된다.

시나위가 데뷔 앨범을 내고 라디오 공개방송과 라이브 콘서트를 통해 인기를 높여가면서 백두산과 부활도 데뷔 앨범을 내게 된다. 이들의 활동과 인기몰이는 헤비메탈 또는 록음악이 한국에서도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록음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기획사들은 보컬리스트의 대중적 가능성에만 주목했고 헤비메탈 밴드는 잦은 멤버 교체를 경험하게 된다. 그런 사이 대중들은 헤비메탈이라는 음악에 대해 관심을 잃어갔다.

시나위의 경우도 기타리스트이자 밴드의 상징적인 존재인 신대철을 제외하고 앨범을 낼 때마다 멤버를 교체하는 진통을 겪었다. 물론 멤버 간의 불화로 인한 교체도 이유겠지만 그만큼 한국에서 록음악을 한다는 것은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나위를 거쳐간 아티스트들은 대체로 한국 대중음악계에 큰 족적을 남긴다. 가장 먼저 대중적인 지지를 얻은 서태지나 김종서를 비롯해서 H2O와 삐삐밴드 등에서 활동한 강기영과 김민기(드러머), 여기에 최근 왕의 귀환으로까지 소개되는 임재범까지 시나위 출신 아티스트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이런 점만 봐도 시나위는 한국 헤비메탈의 역사이자 록을 근간으로 한국 대중음악을 다양하게 만든 절대공신이다. 그리고 시나위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밴드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

권오성 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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