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닥터 최중근의 세상 내시경] 전기 없는 세상의 불안 바이러스

마음이 불안하면 모든 일이 음모처럼 보인다. 지난번처럼 갑자기 대규모 정전 사태가 나면 '이거 대체 무슨 일이지?'하다가 '혹 누가 고의적으로'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다 결국 한 국회의원은 참지 못하고 "북한의 사이버 테러일지도 모른다!"고 외쳐 버린다. 당연히 네티즌들이 벌떼처럼 일어난다. 걸핏하면 전가의 보도처럼 북한 운운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비난이 폭주하면 그제야 자신이 경솔했음을 인정하는 등 불안과 의혹의 연결 고리는 음모론이 슬며시 고개를 드는 단초를 제공한다.

불안 바이러스는 언제나 공존한다. 매일같이 지구촌 어느 한편에서는 총격전이 벌어지고, 또 어느 한편에서는 독재자나 장기집권을 참지 못한 이들이 체제에 반기를 든다. 그래도 언론에 등장하는 불안 바이러스는 차라리 낫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도 불안과 걱정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흔이 넘으면 이런 불안감도 쉽게 표출하기 어렵다. 어린 부하직원들이 사오정(45세 정년)입네, 오륙도(56세까지 있으면 도둑)입네 하면서 웃어대기라도 하면 그게 또 같이 웃을 수 없는 거다. 속으로 '저것들이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지?' 싶다가도 그들이라고 마냥 태평스럽지 않을 터. 회사는 새로운 인사제도다 뭐다 하면서 핵심인재만 키우려 할 뿐 내세울 게 없는 평범한 이들은 안중에도 없다.

미국 같으면 이런 고민은 간단히 해결된다. 미국이 잘나서가 아니라 프로작(Prozac) 혹은 팩실(Paxil) 같은 우울증 치료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만 먹으면 온갖 경우의 수에서 생길 수 있는 불안과 초조가 단칼에 없어진다고 떠들어대지만 그런 약들을 먹고 일시적으로 편해진다 해도 근본적인 불안감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전쟁이든 경제든 집안문제든 혹은 그것이 정전이든 간에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는 분명 존재한다. 그것도 생각보다 지천에 널려 있다. 해결책은 둘 중 하나뿐이다. 문제를 풀든가, 문제를 보는 시각부터 바꾸든가. 나는 '어쩔 수 없다면 받아들인다' 주의자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머리 터지게 달려들어야 마땅하지만 내가 어쩔 수 없는 문제를 놓고 소위 '끝장'을 보는 것은 힘 빠지고 김 새는 노릇이다.

인류에겐 진정한 평화기란 없었다. 역사를 봐도 폭력과 식인의 기록은 80만 년 전까지 올라간다. 평화는 전쟁과 전쟁 사이의 휴지기에 불과하다. 총 쏘고 싸우는 것만이 전쟁인가? 우리 일상이 전쟁이다. 미친 듯 달려가는 테크놀로지의 발달, 돈만 되면 지구 끝까지 달려가는 세계화의 돌풍, 갈수록 심해지는 부익부 빈익빈 등 어느 한순간도 불안 바이러스에 자유롭지 못하다. 모두가 불안하니까 이대로 상황을 즐기자는 것도 아니다.

전전긍긍하는 게 볼썽사납지만 인간인 이상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수도 없다. 이런 경우를 위해 영국의 어느 행동학자는 "인간은 위험을 싫어하고 변화에 저항하지만 위험에 맞설 때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맞서지 않으면 무엇을 잃게 될지 명확히 알면 과감히 위험과 변화를 받아들이는 법"이라 했다. 내가 불안해하고 있는 문제를 다시 한 번 보자.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 말이다.

전기가 부족하면 아끼면 된다. 거기에 음모니, 원자력발전소니, 예정된 플랜이니 하는 따위의 불안 바이러스는 불필요하다.

(구미 탑정형외과연합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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