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상백일장] 입양/고향까마귀/뜬구름/감 홍시

♥수필1-입양

살다 보면 차선으로 최선 삼을 때가 있다. 입양의 문제가 그렇다. 그것은 분명 아름다운 최선이지만, 그래서 어려운 차선이기도 하다. 자리매김의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내 부모, 내 자식이라는 사적인 영역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가 대신하게 허락한다는 것. 방법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복잡한 얽힘을 감수하면서까지 타인에게 온전히 자리를 내어주는 일. 그건 여간하지 않고는 실천하기 힘든 대안이고 적극적인 용기다.

지인의 돌잔치에 갔다가 그런 용기를 보았다. 부부가 안고 있던 아이는 입양아라고 했다. 백방으로 노력해도 아이가 생기지 않아 고통받다가 뒤늦게 입양을 결정했단다. 아이를 어르는 내외의 얼굴이 전에 없이 편안해 보였다. 그들의 심경이 어떤 것인지, 또 아이가 자라며 느끼게 될 심정은 어떤 종류일지, 하객인 내가 다 헤아릴 수는 없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살아 체득하는 경험은 완전히 다를 것이므로. 아이가 없는 부부와 부모가 없는 아이. 모르긴 해도, 그들이 완전한 가족이 되기까지는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게 되지 않을까. 그럼에도 인생의 흠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흠집 위에 집을 지은 그들의 용기가 참 좋아 보였다. 아이가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한 사람의 어른으로 성장할 것임을 믿기에 왠지 흐뭇했다.

함께 살아도 정처 없는 가정이 늘어만 간다. 날로 각박해지는 세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드높다. 그래도 이렇게 서로의 결핍에 기대고 흠집을 감싸 안는 가정도 늘어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사람은 누구나 흠집투성이로 살아간다. 그래서 가정이라는 따뜻한 집이 필요한 것이다. 입양은 용기 있는 사랑이다. 아무도 외롭지 않도록, 지금도 새로운 가정을 건축해가는 아름다운 용기들에 소리 없는 박수를 보낸다.

이치우(대구 수성구 범어동)

♥수필2-고향까마귀

어릴 적에 나는 동네 어른들로부터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오고 까마귀가 울면 안 좋은 일이 있다'고 들으면서 자랐다. 담배를 말리는 건조장 옆에 있던 감나무 꼭대기에서 까치가 '인사'하는 날 아침에는 꼭 마당을 쓸면서 반가운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곤 했다. 하지만 까마귀는 흉측한 울음소리뿐만 아니라 들판에서 죽은 짐승의 시체를 파먹는 습관이 있어서 사람들이 싫어했다. 그러나 "객지에서는 고향 까마귀만 봐도 반갑다"고 했다. 객지에 나오면 고향의 나쁜 것까지도 그립고 반가울 정도로 고향이 좋다는 뜻이리라. 며칠 전에 고향 후배가 누님 소식을 듣고 전화를 걸었다. 지금은 폐교가 된 산골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처음으로 들어보는 후배의 '아재!'라는 목소리에 40년간 한 번도 불러보지도 떠올리지도 않았던 이름이 나도 모르게 입에서 나오니 신기하기만 했다. "영순아!" 길거리에서 만났더라면 서로가 몰라볼 만큼 늙었지만 전화기를 타고 들리는 목소리를 따라서 40년 전으로 기억은 달려갔다.

후배라지만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깍듯이 '아재'라고 불러주니 난 금세 그 시절로 돌아갔다. 영순이를 통해서 고향 후배들의 소식도 들었다. 어려운 시대,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서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올해가 가기 전에 고향 선'후배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구수한 사투리 편하게 쓰면서 개울가에서 멱 감고, 언 논에서 썰매를 타고, 어머니 따라서 이 산 저 산으로 뽕 따러 다니던 이야기, 한겨울에 학교 가던 길에 추워서 어른들 몰래 모닥불 피웠다가 산불 내고 혼났던 이야기, 고향 까마귀조차 구경 못 하면서 공장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이불 덮어쓰고 밤마다 울었던 이야기를 나눌 기대에 부풀어 있다. 고향 까마귀보다 더 보고 싶은 선'후배들을 만날 기대에 벌써 내 마음은 12월에 가 있다.

허용환(서울 용산구 이촌동)

♥시-1뜬구름

벅찬 가슴이 부풀어

구름이 되는 줄 알았더니

가없는 탄식과 한숨이

구름이 되는구나

실체도 없는 뜬구름

그 구름에 매달리는

구름 같은 인생이여

정상호(대구 달서구 용산동)

♥시2-감 홍시

홍시 한 알

손 안에 쏙 들어오니

기분이 묘하다.

가을빛에 투명하니

속살 비치는

주황빛

그 무엇처럼 말랑말랑하니

감꼭지가 떨어지지 않아 비틀면서

한 잎 베어 물기 아까운 것을

기어코 따야 하는가?

내가 아니면 그 누군가 따겠지!

까치밥 될까?

차라리 까치밥 되는 게 낫겠다.

두어 바퀴 돌리다가

감잎으로 덮어 두고 돌아서는데

어느샌가 툭! 하고 떨어지고 만다.

터지긴 했지만 다행히

내 앞에서

속살 보이는 홍시를 두 손에 담는다.

내 것이 되었으니

기꺼이 두 손으로…

류용현(대구 북구 동천동)

※지난주 선정되신 분은 정종숙(대구 달서구 이곡동) 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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