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들이 분노하고 있다. 대중들의 분노는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세계 곳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중동 민주화를 이룩한 대중들의 분노는 쓰나미처럼 밀려가 세계 금융의 중심지 월가까지 점령했다. 오랜 세월 침묵하던 대중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이유는 가속화되고 있는 사회 양극화 때문이다. 소수에게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이 심화되면서 대중들의 삶이 갈수록 피폐해진 것이 대중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분노의 물결이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귀를 기울여 봤다.
◆대중들의 분노로 들끓는 지구촌
지난해 12월 17일 튀니지 중부에 있는 작은 도시 시디 부지드에서 20대 청년이 높은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독재에 대한 항거의 표시로 분신자살했다. 이 청년의 죽음은 민주화를 열망하는 거대한 물결이 되어 순식간에 중동과 아프리카로 퍼져 나가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의 30여 년 독재 체제를 무너뜨렸고 42년간 철권통치를 해 온 리비아의 원수 카다피까지 몰락시켰다. 바로 아랍권에 민주화 바람을 일으킨 재스민 혁명이다.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자 세계 자본주의 중심인 월가에서는 월가 점령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올 9월 시작된 월가 점령 운동은 불길처럼 번져나가 미국 내 주요 도시뿐 아니라 국경을 넘어 세계 80여 개국, 1천500여 개 도시로 확산됐다. 우리나라에도 월가 점령 운동이 상륙했다. 지난달 15일 수백 명이 서울 여의도 증권가와 시청 앞 등에 모여 '여의도를 점령하라' 등의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20대 80 사회'→'1대 99 사회'
독일 슈피겔지 편집장 한스 피터 마르틴은 1998년 '세계화의 덫'이라는 책을 통해 상위 20%가 부의 80%를 소유하는 '20대 80 사회'의 부작용을 경고했다.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지금 '1대 99 사회'가 화두로 등장했다. 최상위 1%가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반면 나머지 99%는 상대적 박탈감과 빈곤에 시달리고 있음을 비유한 말로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양극화 현상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세계 곳곳에서 대중들의 분노가 터져 나온 이유를 '1대 99 사회'로 대변되는 극단적 양극화 현상에서 찾고 있다. 카다피의 죽음으로 일단락이 된 리비아 사태의 경우 막대한 석유 채굴로 벌어들인 돈을 국가 발전 대신 카다피와 측근들의 사유 재산을 불리는 데 사용한 것이 원인이었다.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으로 서민들의 삶은 파탄 지경에 이르렀지만 카다피 일가의 재산은 무려 2천억달러(24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월가 점령 운동도 극단적 양극화를 부채질한 금융자본에 대한 99%의 분노를 담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70년대까지는 최상위 1%의 소득이 일반 노동자 임금의 30배였으나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 2008년에는 300배로 증가했다. 최상위 1%는 더욱 부자가 되었는데 나머지 99%는 살기가 더 어려워진 셈이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발생 이후 미국의 실업률은 9%를 넘어섰고 중산층이 몰락하면서 빈곤율이 증가했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막대한 구제금융을 받은 월가의 은행들과 투자회사들은 고액연봉 잔치를 벌여 미국 시민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우리나라 상황
심화되는 양극화 현상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유엔개발계획이 국민소득과 교육수준'평균수명 등을 종합 평가해 매년 발표하는 인간개발지수(HDI)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올해 15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불평등지수를 적용한 HDI 순위에서 한국은 올해 32위를 차지했다. 그만큼 한국의 불평등지수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월소득 수준별 가계수지' 자료를 보면 전국 2인 이상 가구 가운데 상위 10% 가구의 1분기 월평균 소득은 1천15만원으로 2009년 같은 기간에 비해 81만원 증가했다.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가장 많은 것이다. 상위 10% 가구의 1분기 월평균 소득은 2005년 760만원, 2007년 856만원, 2009년 934만원으로 매년 큰 폭의 증가세를 보이다 결국 지난해 1천만원을 돌파했다. 반면 소득 하위 10% 가구의 1분기 월평균 소득은 58만원으로 최저생계비 86만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5년 전보다 41.6% 늘었지만 증가액은 고작 17만원에 불과했다.
2009년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한국의 소득불균형과 사회행복'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소득불균형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계속 심화돼 OECD 국가 중 7번째로 빈부격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 10%와 하위 10%의 소득격차를 나타내는 소득 10분위 배율을 보면 한국은 OECD 평균인 4.2배를 상회하는 4.7배였다. 또 상대적 빈곤율은 1992년 7.7%에서 2008년 14.3%로 늘었고 빈곤탈출률은 1999년 53.5%에서 2004년 42%로 줄었다. 이는 소득이동이 어려운 사회로 변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에 대해 삼성경제연구소는 "한국의 양극화는 중산층의 축소가 대부분 하위소득계층의 증가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보다 더욱 심각하다. 1997년부터 2005년까지 중산층 비중이 5.3% 포인트 하락한 반면 하위층은 3.7% 포인트, 상위층은 1.7% 포인트 증가했다. 중산층의 축소와 경직된 소득이동성은 사회분열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심화되는 사회 양극화는 대중들의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살 관련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률(2009년 기준)은 인구 10만 명당 28.4명으로 OECD 평균 11.2명에 비해 3배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양극화가 국민의 행복지수를 떨어뜨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한국에 던지는 메시지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양극화 추이를 고려해 볼 때 세계적으로 표출되는 대중들의 분노가 남의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중산층의 몰락과 빈곤층의 양산으로 대변되는 소득 양극화 현상은 정부와 정책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사회 불안의 불씨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월가 점령 운동을 초래한 미국의 경제 정책을 우리나라가 답습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시민들의 분노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의 경우 지난 30여 년간 부자 감세와 금융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한 하향식 경제정책을 펼쳤다. 대기업과 부자에 대한 감세를 통해 투자를 활성화시켜 경제의 상층 부분을 성장시킨 뒤 성장의 과실 중 일부를 중소기업과 노동자에게 재분배해 경제 전체의 성장을 달성하려는 것이 하향식 경제정책의 핵심 내용이다. 하지만 하향식 경제정책은 경제성장률을 높이지도 못했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화시켰으며 2008년에는 파국적인 금융위기까지 초래했다. 부자 감세와 재벌'금융'수도권에 대한 규제 완화 정책을 펼쳐온 현 정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형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월가 점령 시위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한국의 경제 정책 기조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패한 정책인 하향식 경제 정책을 우리나라가 고수할 경우 한국경제의 미래는 없다. 비수도권과 중소기업'자영업'노동자에게 집중투자하는 상향식 경제 정책을 펼쳐야 지역경제와 한국경제에 희망이 있다. 현 정부가 동반성장과 공생발전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효성 있는 정책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양극화가 더욱 진행될 경우 한국에서도 대중들의 분노가 본격적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최상위 1%에 대해 반감을 드러낸 세계 대중들의 분노는 한국의 부자들에게도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빌 게이츠는 자본주의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담보하고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해 가난한 사람들과 이득을 나누는 '창조적 자본주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워런 버핏은 부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 미국의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해야 한다며 일명 부자세로 불리는 '버핏세'를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의 부자들은 사회 공헌에 인색하다. '1대99 사회'를 비판하는 세계 대중들의 외침은 한국의 부자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하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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