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의 살던 고향은] (20) 대구시조시인협회 이정환 회장의 경북군위 고로

논밭적어 궁핍했던 마을…일연·의상대사는 상상력의 원천

어릴 적에 놀이터 삼아 뛰어놀던 학암리 성황골의 신비의 소나무. 둘레 4.5m, 높이 7m에 수령은 500년 정도로 추정된다. 이 소나무를 만지며 기도하면 소원성취한다는 전설이 깃들어 외지인들의 발길이 잦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태백의 힘찬 줄기 아미산 영봉~~" 군위군 고로면 학암리 고향 가는 길에 만나는 아미산 능선 기암봉. 고향을 떠올리면 한 폭의 산수화처럼 우뚝 솟은 세 봉우리가 아른거린다. 의상대사가 이곳에 올라 손수 깎은 나무오리를 날려 앉은 자리에 압곡사를 창건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일연 선사가 삼국유사를 집필한 인각사.
어릴 적에 놀이터 삼아 뛰어놀던 학암리 성황골의 신비의 소나무. 둘레 4.5m, 높이 7m에 수령은 500년 정도로 추정된다. 이 소나무를 만지며 기도하면 소원성취한다는 전설이 깃들어 외지인들의 발길이 잦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이정환 대구시조시인협회 회장
일연 선사가 삼국유사를 집필한 인각사.
이정환 대구시조시인협회 회장

군위군 고로면 학암리, 내가 태어나서 여섯 살 때까지 살던 곳이다. 어린 시절에는 그야말로 두메산골이었다. 속칭 성황골이라고 불리는 우리 마을은 '고향의 봄' 속의 정경을 그대로 안고 있어 처음 와 보는 이들에게도 정겨움을 안겨주는 동네다. 논밭이 적어 살림들이 넉넉하지 못했다. 담배와 고추농사를 하여 얼마간의 수익을 올렸지만, 요즘은 담배 재배를 거의 하지 않는다.

고향 가는 길목에 깎아지른 바위벼랑인 학소대가 있는 강 건너편에 저 유명한 인각사가 있다. 일연선사가 말년에 삼국유사를 집필한 절이다. 지금은 큰길 옆이지만 수십 년 전만 해도 '길은 절 안마당으로 천천히 끌려들어간다'는 느낌을 줄 만큼 고찰의 분위기가 있었다.

일찍 고향을 떠나 대구로 이주해 왔지만 고향에서 보낸 기억은 적잖다. 동네 조무래기들과 이른 봄 뒷산에 올라 그 당시 귀했던 성냥으로 불장난을 하다가 그만 불이 크게 번져 혼비백산 뿔뿔이 도망치던 일이며 입언저리가 붉어지도록 참꽃을 따먹으며 허기진 배를 안고 온 산을 헤매던 일, 상여를 따라가다 떡을 얻어먹던 기억들이 아직도 아련하다. 어느 날 산에 나무하러 갔다 오신 아버지가 지게 위에 꽂고 오신 한 묶음 참꽃을 마당에 놀고 있던 내 품에 불쑥 안겨주셨다. 그 추억으로 말미암아 평생 문학을 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수염 난 까칠까칠한 얼굴을 내 얼굴에 마구 부비며 하늘 높이 나를 번쩍 들어 올려 주셨을 때 나는 양 겨드랑이에 날개가 곧 돋아날 듯하였다. 쟁기 위에 올라타고 흥얼거리며 아버지와 함께 밭 갈던 일, 포근한 누이 등에 업혀 늘 밀고 드나들던 사립문을 나와 동네 구석구석을 구경 다니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뿐이랴. 뒤란 감나무 가지 위에 올라가 샘물을 내려다보다가 그만 가지가 부러져 옹달샘에 곤두박질쳐 죽을 뻔 했던 사건도 겪었다.

그윽이 저물어서 물소리에 별이 뜨듯 다듬이에 감겨들던 풀물 맨 유년시절 달빛은 문지방 너머 연한 살결 내보였다 무명적삼 홀로 헤맨 꿈속 어느 벼랑쯤 헛놓은 발걸음에 단잠 깨던 봄 한나절 가난은 장다리꽃밭 나비 떼로 묻어났다 솔가지 한 짐 지고 큰기침이 멎던 뜨락 지게 위에 꽂힌 꽃을 품에 불쑥 안겨주고 허허허 너털웃음에 산 솔빛이 흔들렸다

-「봄날에」

월순 유순 승자 말례 점례. 다섯 누이들의 이름이다. '이겨서 아들 얻자, 끝내자, 점찍자'라는 뜻을 담은 누이들의 이름에서 아들을 얻고자 하는 아버지의 열망을 엿볼 수 있다. 어머니는 첫아들을 병으로 잃고 내리 다섯 딸을 낳았다.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장날이면 약주에 취해 돌아와서 마을 뒷산에 올라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고 한다. 군위군 고로면에 아들 없는 사람은 나밖에 없노라고. 그런 와중에 내가 태어났으니 얼마나 기뻤을까. 그렇지만 갓난아기 때부터 잦은 병치레 때문에 어머니의 애간장을 적지 않게 태웠을 것이다.

일제침략기 시절 일본에 건너가서 10여 년간 지낸 부모님은 해방이 되자 고향을 다시 찾게 되면서 신산의 삶을 살았다. 일본에 남자고 고집했던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는 바람에 참혹한 전쟁의 고통을 겪었고, 빈농으로 말미암아 식솔들을 제대로 먹이고 입히기가 어렵게 된 것은 아버지의 잘못이 컸다. 그러나 어찌하랴.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고향 산천에 뼈를 묻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도 틀린 것만은 아니었던 것을.

큰누님을 산 너머 싸리밭골 마을로 시집보낸 후 온 가족이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한 것은 물려받은 논밭으로는 여덟 식구가 먹고살기에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철부지였던 나는 왜 학암리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지를 모른 채 낯선 대구로 왔다. 그러나 나의 뇌리 속에는 늘 고향 마을 뒷산과 당산나무, 물놀이하던 개울가, 가을이면 감이 주렁주렁 달리던 감나무가 있던 초가집과 눈에 환한 골목길이 깊이 각인되어 있어서 잠을 자다가도 깨면 문득 이곳이 학암리 우리 집 안방이 아닌가 하고 화들짝 놀라곤 하였다.

학창 시절 네 살 어린 남동생과 낙전리 싸리밭골 큰누님 집에 방학 때면 자주 놀러가곤 했다. 누님은 동생들이 애처롭다면서 찰밥과 토끼 고깃국을 끓여주었다. 얼어붙은 홍시와 푹 삭은 고염 열매, 토종꿀도 실컷 맛보게 하였다. 떠나는 날 누님은 동구 밖까지 따라와서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 옷고름으로 눈물을 닦았다. 우리는 그런 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면서 잠시 슬픔 같은 것을 느꼈지만 정겨운 산길을 내려가는 재미에 금방 마음이 밝아졌다.

학소대, 인각사와 더불어 오리쯤 떨어진 석산 마을에 있는 아미산을 빼놓을 수 없다. 그리 높지 않지만 우뚝 솟아오른 바위산이 절경이다. 석산초등학교에 가을 운동회가 열릴 때면 수백 명이 넘는 아이들과 동네 주민들의 함성이 아미산을 뒤흔들 정도였다.

큰누님 집이 있는 낙전리 싸리밭골 가는 길에 고불고불 수십 굽이를 돌아 오르면 압곡사라는 작은 절이 있다. 천혜의 요새와 같은 곳이다. 압곡사 경내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그 또한 절경이다. 의상대사가 아미산 봉우리에서 손수 깎은 나무오리를 날려 보내자 날개를 퍼덕이며 순식간에 날아가서 앉은 자리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고로면을 찾는 이들에게 인각사, 학소대와 더불어 아미산과 압곡사를 꼭 들러보라고 권하고 싶다. 자연의 비의와 사람살이의 깊이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빼놓을 수 없는 곳이 하나 더 있다. 고즈넉한 학암리 마을 전경의 정취와 함께 뒷산 오르는 길 어귀에 서 있는 '신비의 소나무'다. 수령 오백 년 가까이 된 이 소나무를 보며 자란 이들 중에 외지로 가서 꽤 훌륭하게 된 이들이 있다는 소문이 널리 알려진 뒤 여러 차례 방송과 신문에 보도된 바가 있다. 요즘도 날마다 적잖은 사람들이 다녀간다고 한다. 나는 한 번도 그곳에서 기원해 본 적은 없지만, 신비의 소나무의 헌걸찬 위용은 가히 바라보는 이들의 눈길을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다.

고향을 지키고 있는 피붙이로는 50대 중반의 오촌 조카 내외가 있다. 다른 형제들과 사촌들은 다 객지로 떠났지만 집안의 갖은 길흉사를 도맡아 보면서 논농사와 밭농사, 과일 재배로 살림을 크게 일구어 살면서 당숙인 내게 늘그막에 이곳에 들어와서 같이 어울려 살자고 권하곤 한다.

몇 해 전에 고로면 소재지가 물에 잠겨 버렸다. 고향 오가는 길에 추억거리가 많던 초'중학교와 장터, 눈에 익은 많은 집들이 사라지고 낯선 면사무소와 농협이 산중턱에 자리 잡았다. 댐이 물에 잠겨 버렸으니 옛 기억을 더듬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시조를 쓴 일이 있다.

꿈을 수몰시킬 수 없어 무릎 일으킬 때

잎들은 서쪽으로 물들어 흩날리고

물속에 들어간 이들 돌아오지 않는다

깊숙이 물에 잠긴 골목길에 붙들려서

수장을 마다 않은 그 가을 잠자리 떼

끝없이 어딘가로 가는 억새꽃이 보인다

-「수몰지의 가을」

고로면 학암리. 윗대 선조와 부모님이 잠든 그곳은 내가 언젠가 돌아가야 할, 돌아갈 수밖에 없는 본향과 같은 곳이다. 내 생명의 근원이고 상상력의 원천이기에 내 젖은 눈길은 이따금 동북 편 하늘 쪽으로 향하고는 한다.

(이정환 대구시조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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