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행복을 요리하는 의사] 지는 꽃도 아름다워라

암은 움직이는 병이다. 암은 생긴 곳에만 가만히 있지 못하고, 혈액이나 임파선을 따라서 온몸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전이가 된다. 폐암이 머리에도 가고 뼈에도 간다. 또 암은 정상이 아닌 이상한 세포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그 비정상 세포들이 뿜어대는 화학물질 때문에 암 환자는 이유 없이 열이 나고, 피곤하다. 더구나 말기암 환자는 여러 부위로 전이된 암 때문에 살까지 빠져서 피골이 상접해진다.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을 전부 잃는 환자는 그나마 낫다. 최악의 경우는 얼굴에 암이 생기는 경우다. 암 덩어리가 얼굴 형체를 알아보지도 못하게 만든다. 누가 보아도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다.

위암 환자였던 연숙 씨도 그랬다. 그녀는 마흔세 살이었고 고3짜리 아들이 있었다. 연숙 씨도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전부 빠지고, 잘 먹지 못해서 광대뼈가 불쑥 나왔다. 그래도 그녀의 까맣고 동그란 두 눈동자는 여전히 반짝거렸다. 처음 연숙 씨를 봤을 때, 그녀의 예쁜 눈만 보였다. 건강했을 때 꽤나 미인이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얌전하고 다소곳했다. 병동에서 실시하는 만돌린 연주 감상이나 노래 교실 프로그램에 참석해 부끄러운 듯 잠깐 뒷자리에 앉았다가 살그머니 자기 병실로 돌아가곤 했다.

그랬던 그녀가 조금씩 변했다. 연숙 씨는 언젠가부터 노래 교실을 할 때 머리에 반짝이 두건을 두르고 나와서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를 부르고 있었다. "한 불교 봉사자가 그랬어요. 우리 모두 가야 할 끝은 같대요.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말고 편안하게 그때까지 살면 된다고 한 말이 참으로 가슴에 와 닿았어요." 시간이 흐르고 그녀의 초롱초롱했던 검은 눈동자는 흐릿해져갔다. 얼굴은 형편없이 더 말라 갔고, 하체는 퉁퉁 부어 신발이 들어가지 않는 발이 되었다. 연숙 씨는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내가 임종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의 남편이 말했다. "아름답게 지는 꽃은 없지만, 깨끗하게 지는 꽃은 있네요." 이제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영원히 떠나가는 연숙 씨의 모습은 살아 있을 때보다 훨씬 편안해 보였다.

아들은 눈물 젖은 얼굴로 가만히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있었다. 나는 그의 말에 100퍼센트 공감이 갔다. 우리가 나고 자라서 죽게 되는 일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무지개처럼 자연스럽고 신비한 일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사라진다.

어떠한 삶을 살았든 간에 환자의 마지막 모습은 평화롭다 못해 환하기까지 하다. 그들은 우리에게 죽음 자체는 힘들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이 떠나는 사람이 남아 있는 사람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며, 희망이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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