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희망없는 사회] <2>중산층의 몰락…불황폭탄에 폭삭 한순간에 하층민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중산층의 수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삶의 질도 나빠지고 있다. 중산층이 한 번 빈곤의 늪에 빠지면 다시 빠져나오기 힘든 사회구조가 되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중산층의 수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삶의 질도 나빠지고 있다. 중산층이 한 번 빈곤의 늪에 빠지면 다시 빠져나오기 힘든 사회구조가 되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10년 동안 기계선반업체를 운영했던 최우혁(가명'63) 씨는 2년 전 금융위기와 함께 공장 문을 닫았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갑자기 환율이 치솟고 원자재값이 급등해 부도를 맞았다. 가족 모두 수입차를 몰 정도로 넉넉한 형편이었던 최 씨 가족의 삶도 한순간에 추락했다. 가세가 기울면서 결혼을 앞두고 있던 아들은 파혼까지 당했다. 최 씨는 요즘 월급 200만원을 받으며 친구 소유의 공장에서 생산직 사원으로 일을 한다. 가업을 잇겠다던 아들은 늦은 나이에 취업을 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전전하고 있다.

중산층이 몰락하고 있다. 저임금의 고착화와 비정규직의 양산, 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중산층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한번 빈곤의 나락으로 빠지면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중산층이 무너진다

대구에서 꽤 알려진 간판업소를 운영하던 이명철(가명'58) 씨가 나락에 빠진 건 3년 전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큰 거래처들이 문을 닫았고, 이 씨의 가게도 자금줄이 막히면서 뿌리째 흔들렸다. 결국 수억원의 빚을 떠안고 가게 문을 닫은 이 씨는 지인들과 친지들로부터 돈을 빌려 휴대전화 판매점과 분식집을 잇달아 열었지만 빚만 눈덩이처럼 키운 채 간판을 내렸다. 이후 집안의 모든 수입은 보험회사에서 일하는 아내가 책임지고 있다. 한 달 소득은 150만원. 이 씨는 "아이들에게 과목당 150만원씩 과외를 시킬 정도였는데 한순간에 빈곤의 늪으로 떨어졌다"며 "앞으로 재기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우리 사회의 든든한 허리 역할을 하는 중산층이 몰락하고 있다. 중산층의 비중도 줄고, 빚이 늘면서 삶의 질도 악화되고 있는 것.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중산층 비중은 1990년 75.4%에서 2000년 71.7%, 지난해 67.5%로 20년 만에 7.9%포인트 쪼그라들었다. 같은 기간 중위 소득의 50% 미만인 저소득층은 7.1%에서 12.5%로 증가했고, 고소득층은 2.5% 늘어나는 데 그쳤다. 소득의 양극화가 심각하게 진행된 셈이다.

중산층에 머물더라도 살림살이는 갈수록 팍팍하다. 맞벌이 가구 비율은 1990년 19.1%, 2000년 21.8%, 2010년 37.0%로 크게 높아졌다. 여기에 통신비와 사교육비, 부채 상환 등 고정 지출은 2, 3배 늘면서 벌어도 빚이 느는 상황이 거듭된다. 실제 적자를 보는 중산층 가구는 20년 만에 15.8%에서 23.3%로 높아졌다.

◆빈곤층 전락하면 재기는 불가능

지난해 말 기준으로 중산층의 가처분소득에서 부채 상환 비중은 1990년 10.4%에서 2010년 27.5%로 3배 가까이 급증했다. 부채 상환액 비중(27.5%)도 전체 지출항목 중 1위다. 2위인 식료품 지출(11.0%)보다 2배 이상 웃돈다.

특히 중산층의 자산 1순위였던 주택 가격이 떨어지고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집을 팔고 이사를 가야 하는 가구는 자금 순환의 숨통이 막혔다.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구입한 중산층들은 '이자 폭탄'을 고스란히 맞고 있다.

5년 전 수성구 한 주상복합아파트를 구입한 조모(56'여) 씨는 요즘 대출금 상환 걱정에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부동산 경기 호황을 잘만 이용하면 1억~2억원은 손에 쥘 수 있다는 얘기에 남편의 퇴직금까지 투자해 집을 샀다. 조 씨는 분양가의 절반가량인 3억4천만원을 은행에서 빌렸고 5년째 이자만 매달 200만원씩 내고 있다. 고깃집을 운영하는 조 씨의 한 달 수입은 400만~500만원. 매달 소득의 절반이 부채 상환에 쓰이는 셈이다. 여기에 식비 등 생활비와 각종 공과금, 차량유지비 등을 제하면 지출이 더 많아 대학생 자녀의 등록금은 학자금 대출로 충당하고 있다. 조 씨는 "손해만 보지 않는다면 팔고 싶은데 사겠다는 사람이 아예 없다"고 한숨 쉬었다.

◆중산층의 몰락은 사회 불안과 직결

빈곤의 위기에 빠진 중산층을 위한 사회적 완충망도 사실상 없다. 특히 대구는 임금 수준이 낮은데다 영세한 제조업체가 많고 자영업자 비중이 높아 가난에서 탈출하기 힘든 구조라는 것. 전문가들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빈곤을 경험한 중산층이 재기할 수 있도록 소득이 정기적, 지속적으로 보장되는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경북대 김규원 교수(사회학과)는 "빈곤층으로 전락한 중산층이 늘어날수록 사회복지 서비스 비용이 크게 증가하고 국가와 지방정부의 재정 부담이 커진다"며 "대학이 단순히 인력을 배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연구기술 인력의 고용을 창출하도록 국가 정책의 전환이 이뤄지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중산층을 위한 직업 역량을 강화하는 정책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만큼 다양한 업종으로 전직할 수 있도록 직업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 계명대 임운택 교수(사회학과)는 "소득의 양극화 현상은 노동시장이 불안정해 안정적인 소득을 얻을 수 없다는데 원인이 있다"며 "기능직 훈련 위주의 직업 훈련에서 벗어나 지식경제사회에 걸맞은 다양한 직업 훈련을 제공해야 중산층이 실직과 은퇴 이후의 삶에 대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김봄이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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