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돈

'돈 나오는 모티(모퉁이)가 죽는 모티'라는 말이 있다. 돈벌이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소리다. 돈과 돈벌이가 얼마나 엄했으면 이런 표현이 나왔을까. 인간사 돈이 얽히지 않는 바 없으니 누구나 공감할 얘기다. 이 말은 돈을 벌기도 어렵지만 번 돈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유교가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전근대 동양사회에서는 돈을 천시했다. 대다수 사대부는 상업의 이윤을 부정하고 상인이 돈을 버는 것을 비난했다. 유교적 질서와 관점이 그러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요즘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인 중 하나가 바로 돈이다. 돈에 대한 고정된 인식을 거부하는 시대인 것이다.

주자학과 대척점에 서 있던 양명학과 같은 심학(心學)의 가르침에서도 이 같은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에도시대인 18세기 초반 일본에 보급돼 사회 분위기를 바꾼 심학은 상인들의 기를 살린 혁신 이데올로기였다. 당시 이름난 상인이자 사상가였던 이시다 바이간(石田梅岩)은 심학을 유행시키면서 이윤 추구를 당연시했다. 대신 근면과 절약, 정직 등 상인의 덕목을 중시했다. 교토의 한 포목점 견습 점원에서 출발해 거부가 된 그는 "진정한 상인은 거래 상대방 입장에도 서며, 자기 입장에서도 서는 것을 생각한다"는 말을 남겼다.

안철수 원장이 자신이 갖고 있는 1천500억 원 상당의 안철수연구소 지분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기업이 존재하는 것은 돈을 버는 것 이상의 숭고한 의미가 있다"며 "이에 못지않게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기여하는 것은 기업이 해야 할 일이자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시대와 환경이 다르지만 이시다의 사상과 맥이 닿아 있다.

안 원장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이나 소위 버핏세는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나 몇몇 양식 있는 부자들의 선의로만 돈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 진정 사람들은 바르게 번 돈 옳게 쓰는 데 더 큰 공감을 느낄 것이다. 부자들이 정직하게 돈을 번다면 아무리 벌어도 욕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돈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 가진 자도 예외는 아니다. 많든 적든 돈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기 때문이다. 부정하게 돈을 모은 자들에게 언젠가 눈물을 요구하는 것도 세상 이치다. 이제 돈을 보는 눈과 인식을 바꾸는 데 가진 자들이 앞장서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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