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가스 폭발로 화상 입은 베트남인 쩐 티 휘엔 씨

'펑' 소리와 함께 날아간 '행복한 결혼의 꿈'

내년 초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던 쩐 티 휘엔(22
내년 초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던 쩐 티 휘엔(22'여'베트남) 씨는 가스 폭발사고로 큰 화상을 입었다. 휘엔 씨는 앞으로 여러 차례 화상치료 수술을 받아야 한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쩐 티 휘엔(22'여'베트남) 씨는 내년 1월 8일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그는 예쁜 웨딩 드레스를 입고 예식장에 입장할 그날을 꿈꿨다. 하지만 휘엔 씨의 꿈은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주 그가 세들어 살던 집에 가스가 폭발하면서 얼굴과 두 손에 큰 화상을 입었다. 크고 예뻤던 눈은 화상 때문에 작아졌고 양손은 붕대로 칭칭 감겨 있다.

◆가스 폭발과 사라진 희망

15일 오후 대구 서구 중리동 대구의료원 3층 입원실. 휘엔 씨의 얼굴에 남아 있는 붉은 화상 자국이 당시 참혹했던 사고 현장을 말해주는 듯했다. 이달 9일 오후 1시쯤 대구 달서구 진천동의 한 주택에서 가스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폭발 사고가 일어난 곳은 휘엔 씨가 세들어 사는 집이었다. 그는 집에서 400m 남짓 떨어진 양말 공장에서 일하며 밥값을 아끼기 위해 점심시간마다 집을 찾았다. "밥 먹으려고 가스레인지를 켰는데 '펑'하고 갑자기 폭발했어요." 가스레인지 앞에 있던 휘엔 씨는 양손과 허벅지에 2도 화상을 입었고 얼굴도 엉망이 됐다. 사고가 난 집은 대구이주민선교센터 바로 뒤편에 있었다. 굉음을 들은 윤일규 목사와 직원들이 휘엔 씨 집으로 달려가 마당에 쓰러져 있는 그를 발견했고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옮겼다. 사고가 난 날은 휘엔 씨가 양말공장에서 일한 지 3주째 되던 날이었다.

휘엔 씨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다. 2009년 8월 방문취업비자를 들고 한국을 찾았다. 베트남의 작은 도시 하틴(Hatinh) 출신인 휘엔 씨는 삼남매 중 맏이였다. 베트남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한 달에 우리돈 10만원을 벌기 힘들었고 타향살이를 해서라도 집안을 일으키고 싶었다. 그가 유일하게 자신할 수 있는 것은 건강한 몸뚱이였다. 대구 달성군 자동차부품 조립공장에서 일요일을 제외하고 한 달 꼬박 일하면 80만원을 벌었다. 생활비를 빼고 죄다 베트남에 있는 부모님에게 송금했다. 장녀의 어깨는 이토록 무거웠다.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다

한국 생활은 외로웠다. 바닷가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생활했던 베트남 고향이 그리웠다. 공장이 쉬는 날이면 같은 나라 사람끼리 만나 밥을 먹으며 외로움을 달랬다. 휘엔 씨가 타잉 훙(가명'28) 씨를 만난 것은 지난해 11월이었다. 휘엔 씨는 마음이 따뜻한 남자의 행동에 반했다. 남자의 첫 선물은 이불이었다. "요즘 날씨가 춥다고 말했더니 타잉 씨가 이불을 선물해 줬어요. 그때 이 남자 참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타잉 씨가 먼저 "결혼하자"며 휘엔 씨에게 손을 내밀었다. 화려한 프러포즈도 없었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비슷한 처지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예비 부부는 결혼 날짜를 내년 1월 8일로 잡고 대구에서 예식장 예약까지 끝냈다. 하지만 휘엔 씨가 사고를 당하면서 직장과 결혼생활, 삶의 모든 것이 불투명해졌다. 결혼할 때 필요한 물건을 사려고 휘엔 씨가 통장에서 인출한 100만원과 여권도 사고가 난 날 화염과 함께 사라졌다.

◆"휘엔, 내가 있잖아"

타잉 씨는 1년 2개월간 근무했던 이불공장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다. 휘엔 씨를 간호하느라 공장을 몇 번 빠졌던 것이 화근이었다. 공장 사장은 "이제 공장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통보했고 타잉 씨는 일주일 째 입원실에서 먹고자며 휘엔 씨를 간호하고 있다.

이들의 사랑은 한결같지만 문제는 병원비다. 현재 정부의 의료소외계층지원 사업을 받아 입원비 부담은 크지 않다. 지난주 대학병원에 입원했을 때 나온 치료비 100만원이 전부다. 하지만 앞으로 치료과정에서 큰돈이 든다. 많이 다친 양손은 나중에 죽은 피부를 제거한 뒤 피부이식수술을 해야 한다. 화상 치료의 특성상 비급여 항목이 많고 수술 자체가 성형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정부의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치료비가 얼마나 들지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타잉 씨의 마음은 변함이 없다. 어서 빨리 휘엔 씨가 건강을 회복해 내년 1월 결혼식을 올리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를 바란다. 비록 신부의 얼굴은 일그러졌지만 그의 눈에는 여전히 아름답게 보인다. 사랑의 힘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려고 하는 타잉 씨지만 이 냉정한 현실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눈앞이 캄캄할 뿐이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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