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희망없는 사회] <3·끝>무너지는 서민경제…대형마트, 손님들 우르르, 토종가게 와르르

지역 기업과 자영업자들은 하청 위주의 산업 구조와 역외 기업들의 공세 속에서 고사 직전에 처했다. 15일 한 주민이 대구 동구 방촌시장종합상가 빈 점포 앞을 지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지역 기업과 자영업자들은 하청 위주의 산업 구조와 역외 기업들의 공세 속에서 고사 직전에 처했다. 15일 한 주민이 대구 동구 방촌시장종합상가 빈 점포 앞을 지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탄탄했던 대구의 한 토종 여행사는 최근 서울에 본사를 둔 대형 여행업체의 대구지사로 전환했다. 15년 동안이나 영업을 해왔지만 박리다매로 공세를 펼치는 대형 여행사들과의 경쟁에서 버틸 수 없었다. 매출은 절반으로 떨어졌고, 10명이던 직원도 5명으로 줄었다. 결국 업체 대표 서모(48) 씨는 사장직을 포기하고 서울 업체의 월급쟁이 이사로 일하고 있다. 서 씨는 "끝까지 버텨보려 했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며 "지사 전환을 고민하는 다른 지역 여행사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지역 서민경제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하청 중심의 산업 구조와 역외 기업들의 공세 때문에 지역에서 오랫동안 뿌리내린 기업들이 무너지고, 자영업자들도 폐업의 기로에 서거나 허덕이고 있다.

◆무너지는 지역 기업들

대구 달서구 성서산업단지에 입주해 있던 한 자동차부품업체는 납품가를 두고 수주업체와 갈등을 빚다 올해 초 결국 도산했다. 자금 부족으로 수주업체에서 설비를 빌려 2년간 부품을 제작, 납품하던 이 업체는 갑자기 수주업체로부터 납품 단가를 낮추라는 요구를 받았다. 이뿐만 아니라 첫 계약 당시부터 납품 단가가 높았다며 이전 물량까지 모두 소급해서 낮추라는 황당한 요구까지 받았다. 도저히 수지를 맞출 수 없다고 항변하며 납품을 거부했지만 수주업체는 대여해 준 설비를 모두 회수해 가버렸다.

지역 상가와 전통시장도 역외 기업들의 공세로 비틀대고 있다. 지역 상인들이 만든 대구 시내 한 토종 아울렛은 날이 갈수록 빈 매장이 늘고 있다. 개장 초기에는 대단지 아파트를 낀 입지 때문에 호황을 누렸지만 인근에 대기업 계열의 대형 쇼핑몰과 아울렛이 들어서면서 직격탄을 맞은 것. 현재 80여 개 매장 중에서 15곳 정도가 비어 있는 상태다. 이곳 상가번영회 관계자는 "대형 쇼핑몰은 편의시설이 좋고 자금력에서도 월등하기 때문에 도저히 상대가 안 된다"고 푸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역 기업들의 체감 경기는 악화 일로다.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에 따르면 대구경북 제조업의 10월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80, 비제조업 분야는 같은 기간 82로 떨어졌다. 4월 제조업 업황 BSI가 100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6개월 만에 20이나 떨어진 셈이다.

◆벼랑 끝에 선 자영업자

대구 수성구에서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임모(36'여) 씨는 폐업을 심각하게 고려 중이다. 반찬 판매 가격은 그대로인데 식재료값이 훌쩍 뛰었기 때문.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임대료를 올리겠다는 건물주의 통보까지 받았다. 임 씨는 "견디다 못해 반찬값을 500원 올렸다가 손님들의 반감이 심해 다시 내렸다"며 "가게문을 닫고 다른 업종을 찾아볼 생각"이라고 털어놨다.

남구에서 초'중등생 전문학원을 운영하던 이모(51'여) 씨도 한 달 전 20년간 운영하던 학원의 간판을 내렸다. 인근에 대형 프랜차이즈 학원이 들어서면서 학생들이 대거 옮겨가 버린 탓이다. 이 씨는 "학생 수가 3분의 1 이하로 줄면서 집을 팔고 학원에서 기거를 했지만 오래 버티진 못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시장 현대화사업에 큰 기대를 걸었던 전통시장 상인들의 상실감도 크다. 정부 지원금 9억원과 상인 자부담 1억원 등 10억원을 들여 시설 현대화를 한 대구 동구의 한 전통시장은 시설을 고치고, 홍보 행사를 강화했는데도 손님들의 발길이 뜸하다. 이곳에서 이불가게를 하고 있는 이모(52'여) 씨는 "20년간 장사를 해서 모은 돈으로 점포 5곳을 분양받았지만 3곳은 세입자가 없어 빈 점포로 남았다"며 "상인들이 똘똘 뭉쳐 할인쿠폰까지 발행했지만 상가 관리비도 내기 힘들 정도로 손님이 없다"고 푸념했다.

자영업자들의 위기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이 지갑을 꽁꽁 닫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 생산과 소비의 선순환 구조 시급

전문가들은 지역 내에서 생산과 소비가 이뤄지는 내생적 산업 구조를 갖추지 않으면 지역 경제가 살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생활협동조합 등을 통해 지역 내 소비를 촉진하고, 소비가 지역산업을 부양해 일자리를 제공하는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 또 지역 경제의 '혁신'을 위해 창조적인 기업가 정신을 키울 수 있는 토양을 다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하청과 재하청 구조에 있는 제조업과 고도화되지 못하고 양산 체제에 머물러 있는 제조업이 대구 경제를 이끄는 구조 아래서는 창의적인 기업가 정신이 발휘될 수 없고, 지역의 '산업파이'도 키울 수 없다는 것이다.

계명대 황석준 교수(경제금융학과)는 "지역 경제가 살려면 국가 경제가 먼저 살아야 하겠지만 지자체 차원에서도 대구시는 전국의 지자체들이 모두 탐내는 첨단산업이나 대기업 유치보다는 비교 우위에 있는 산업을 집중 지원하고 대구만의 특화된 산업계획을 짜서 꾸준히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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