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책을 가까이할 때다.
계절이 주는 스산함을 책의 서정적 느낌으로 달래는 때다.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글자를 모른다면 이 아름다운 마음의 창을 열 수 있을까.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조근식 감독의 '그해 여름'(2006년)은 농촌봉사활동을 나온 대학생 석영(이병헌)과 시골 도서관 사서 정인(수애)의 사랑을 그린 영화다. 정인이 산골 사람들을 모아놓고 책을 읽어주는 장면이 있다.
'뜨거운 그의 손이 경아의 손목을 휘어잡았다. 경아는 두려움에 휩싸였으나 그의 손을 뿌리치고 싶지는 않았다. 경아의 가슴은 두 방망이질을 했고, 그는 경아의 손을 잡고 산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연애소설의 뜨거운 장면이 시골 아가씨의 목소리로 중계된다. 이제 그 하이라이트 부분이다.
'산장 안은 경아의 가슴처럼 따뜻한 온기로 가득했다. 갑자기 그가 경아의 입술을 누르고….'
난감하다. 동네 노인들 앞에서 이 장면을 어떻게 읽을까. 정인은 소설을 다르게 읽는다. 원래는 '가슴을 움켜잡는다'지만 이를 '손을 잡고 난로를 쬐었다'로 바꿔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아, 그게 다여? 아닌 것 같은데?"라고 하지만 글을 읽을 수 없으니 외로운 산장 안에서 벌어지는 남녀의 뜨거운 사랑은 알 길이 없는 것이다.
글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수치인지 잘 보여주는 영화가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사진'2008년)이다. 독일 베스트셀러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대표작을 영화로 옮긴 것이다. 1950년대 독일을 배경으로 15살 소년과 36세 여인 한나의 사랑을 담아낸 소설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이 한나가 전범 재판을 받는 장면이다. 수감자들을 이동시키는 죽음의 행군 책임자를 가리는 재판이다. 그녀는 아우슈비츠에서 감시원으로 근무했다. 사람들은 그때 작성한 보고서를 증거로 그녀가 책임자라고 주장한다. 필체만 확인되면 그녀의 무죄가 밝혀진다. 그러나 그녀는 이를 거부하고 감옥을 선택한다. 과연 그녀가 책임자였을까.
사실 그녀는 문맹이었고, 보고서도 그녀가 작성한 것이 아니었다. 글을 읽을 수 없다는 수치가 감옥보다 더 큰 불명예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김중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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