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를 둘러싸고 벼랑 끝 대치를 이어가고 있는 여야가 결국 '공멸'의 길을 가고 있다. 기성 정당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확인하고도 변하지 않는 정치권에 대한 비판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관계기사 6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17일 오전 각각 최고위원회의와 고위정책회의를 열어 물리적 충돌 직전까지 몰린 한미 FTA 처리 대책을 논의했다. 하지만 기존 입장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한나라당에서는 전날 민주당이 투자자 국가소송제도(ISD) 재협상에 대한 양국 간 서면 합의를 요구하며 이명박 대통령의 '발효 3개월 내 ISD 재협상' 카드를 사실상 거부한 데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홍준표 대표는 "민주당의 요구는 외교적 관례에 어긋날 뿐 아니라 모욕에 가까운 억지"라며 "설득할 만큼 했고 민주당의 요구를 100% 받아들인 상황에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밝혔다. 황우여 원내대표 역시 "민주당은 파국으로 몰고 가려는 것인지, 정치 회복에 대한 아무런 노력 없이 18대 국회를 마치려고 하는지 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역시 답답한 심경을 숨기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동남아시아 순방 출국에 앞서 "일본과 대만이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를 서둘러 하려 하는데, 우리는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안타깝다"며 "FTA가 빨리 되면 젊은 사람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줄 수 있는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여당이 비준안 단독처리를 시도할 경우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결사적으로 저지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고위정책회의에서 "국가 간 협상은 말 대 말로 시작하지만 문서 대 문서로 끝날 수밖에 없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며 "한나라당이 이제 와서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박영선 정책위의장도 "야당 입장에서 서면 요구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한나라당은 이날 오후 2시부터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어 한미 FTA 비준안 처리에 대한 당내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그러나 비준안 처리를 더는 미룰 수 없다는 강경파의 목소리에 힘이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이와 관련, "국회법 절차에 따라 처리하겠다"며 "의총에서 절차를 확정하고 FTA 처리를 해나갈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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