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뮤직토크(52)] 한국대중음악계에 던지는 짧은소리

표절은 양심 문제…음악 위해 '범죄'로 여겨야

피카소는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고 말했다. 이 말은 타계한 스티브 잡스가 즐겨 인용한 말이기도 하다. T.S. 엘리엇도 "미성숙한 시인들은 모방하고 성숙한 시인들은 훔친다"고 말했다. 모방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의 것을 답습하는 아류를 말하는 것일 테고 훔친다는 말이 묘한데 이는 남의 것을 베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훔친다는 것은 직관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다른 작품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중음악계에서 훔치는 것은 융합을 통해 새로운 스타일을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스타일이 등장하고 인기를 얻으면 수많은 아류가 등장하는데 모방이다. 대체로 훔치는 일은 아티스트로 존경을 받고 모방은 한때의 인기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국대중음악계에서는 유독 훔치는 일이 뉴스가 된다. 흔히 하는 말로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일이 훔치는 일인데 앞서 말한 바와 의미가 다르다. 곧 표절을 말한다.

한국에서는 원곡과 8마디, 2소절 이상의 멜로디가 같은 경우 표절로 판정했다. 1990년대까지 존재했던 이 규정은 공연윤리위원회에서 사전심의를 할 당시의 기준으로 사전심의가 철폐되면서 소멸되었다. 현재는 원저작자가 문제를 제기할 경우 실질적 유사성과 접근성에 근거한 표절 판정을 내린다. 그러다 보니 인기에 연연한 기획사와 가수는 일단 곡을 발표한 후 표절 의혹이 불거지면 원저작자와 합의를 보거나 활동을 중단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니면 작곡가의 몫이지 우리는 몰랐다는 식이다.

표절은 창작하는 사람의 양심 문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여론과 대중들의 태도이다. 표절을 별문제로 생각하지 않아서인지 표절 의혹이 있는 곡이나 가수는 여전히 방송에 나오고 표절 판정을 받아도 잠시만 쉬었다 나오면 대중들의 환호를 받는다. 심지어 자신의 과거 표절 행태를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추억처럼 떠드는 모습은 이해하기 힘들다. 관대함인지 무감각한 것인지….

물론 대중음악계의 표절문제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본도 1990년대 아이돌 중심으로 음악계가 바뀌면서 표절문제가 불거진 바 있다. 아이돌 그룹들이 음악계에 대거 등장하면서 인기를 위해 특정 작곡가들에 의존했고 이들은 표절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점이라면 표절로 판정받은 노래에 대해 여론과 대중들이 외면했다는 점이다. 표절을 중대한 범죄로 여기는 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의 일본대중음악계가 지금의 한국대중음악계와 닮았다면 우리의 대중들이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음악계는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경로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권오성

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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