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사 보호' '학생인권' 사이 혼동의 교육현장

막나가는 학생 무너지는 교권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둘러싼 찬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총과 서울교총 관계자들은 이달 1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반대하는 집회를 가졌다. 반면 40개 사회단체로 구성된 전북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본부는 이달 8일 전북도의회 앞에서 학생인권조례안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가졌다.

교권 추락이 심각한 상태다. 천안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남학생이 생활지도를 위해 교실에 들어간 여교감의 머리채를 잡은 사건이 발생했고, 광주의 한 중학교에서는 여중생과 여교사가 몸싸움을 벌인 사건이 터져 파문이 일었다. 또 대구의 한 중학교에서는 학생이 교감을 폭행하는 초유의 사건까지 벌어졌다. 교권 침해 현상은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건수도 늘고 있다. 올 9월 교육과학기술부가 김춘진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폭력'협박에 의한 교권침해 현황'에 따르면 2008년 52건이었던 교권 침해 건수가 2009년 75건, 2010년 156건으로 증가했다.

교권 침해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지만 교육계에서는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교권 침해 현상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 보니 내놓은 처방이 제각각이다. 이를 두고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 내야 제대로 된 처방을 내릴 수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자칫 배가 산으로 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잇따라 터진 교권 침해 사건을 계기로 우리 교육계의 현주소를 들여다봤다.

◆체벌금지가 원인 VS 입시위주 교육이 원인

교권 침해의 원인을 두고 교육단체들이 벌이는 논쟁을 보면 한국 교육계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체벌 금지 이후 학생을 지도할 권한이 없어진 것이 교권 침해의 원인이라고 보는 반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입시위주 경쟁교육이 학생의 인성을 망치고 있다는 입장이다.

최근 김동석 교총 대변인은 "서울과 경기도에서 시작된 체벌금지 논쟁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교실 방종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학생에게는 해방감, 교사에게는 무력감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교총이 올 10월 고려대 표시열 교수에게 의뢰해 전국 초'중'고 교사 1천58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83%가 "체벌금지 이후 학교 질서가 무너지고 학생지도가 어려워졌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전교조는 교권 침해가 체벌 금지 논쟁이 시작된 경기도와 서울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이라는 점에 주목, 체벌 금지와 교권 침해가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음을 주장하고 있다. 동훈찬 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은 "교권 추락 원인은 입시교육 강화로 교사들이 학생을 강압적으로 지도하고, 학생이 반발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실제 학교에서는 교권 침해보다 학생인권 침해가 더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학생인권조례는 교육감 성향 따라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한 지역은 경기도와 광주시 두 곳에 불과하다. 두 지역 모두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당선된 곳이다. 하지만 경기도와 광주시의 학생인권조례안의 내용은 상이하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의 경우 학칙으로 학생 인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했지만 광주시의 학생인권조례는 학칙으로 학생 인권을 제한하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어느 지역보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강하게 추진했던 서울시교육청은 최근 서울시의회에 학생인권조례안을 제출하지 않았다. 대신 주민들이 발의한 학생인권조례안이 시의회에 제출됐다. 진보 성향의 곽노현 교육감이 구속되면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필요한 동력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원도교육청도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당선되면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할 방침이었으나 최근 학생과 교사'학부모의 권리를 아우르는 가칭 '학교인권조례' 제정으로 방향을 수정했다. 교사의 교권이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됨에 따라 인권조례의 범위를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반면 보수 성향의 교육감이 당선된 지역에서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소극적이다. 대구시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 대신 교사와 학생'학부모의 의견을 두루 수렴한 '대구교육권리헌장' 선포를 준비하고 있다. 국가적 차원의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지 못하고 지역별로 다른 내용과 다른 이름의 조례와 헌장이 제정'추진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새로운 불씨로 떠오른 학생인권조례

학생인권조례가 갈등을 초래하는 불씨가 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놓고 충청북도에서는 진보와 보수 단체들이 마찰을 빚고 있다. 진보적 성향의 43개 사회단체로 구성된 충북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본부는 이달 10일 충북도의회 회의실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열었다. 이에 맞서 조례제정에 반대하는 보수성향의 단체들은 충북교육사랑시민사회총연합회를 결성해 학생인권조례 제정 저지를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전라북도에서도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둘러싸고 불협화음이 연출되고 있다. 전라북도의회 교육위원회가 학생인권조례안 및 교권조례안 상정을 보류할 방침을 밝히자 40개 사회단체로 구성된 전북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본부가 이달 8일 도의회 앞에서 "제출된 학생인권조례안을 훼손없이 조속히 제정하라"며 집회를 가졌다. 또 대구시교육청이 올 6월 '대구교육권리헌장' 초안을 발표하자 교육계 일각에서 학생들의 의무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대구교육권리헌장은 폐기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체벌 금지 VS 체벌 필요

올 3월 초중등교육법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체벌이 법으로 금지됐다. 하지만 체벌에 대한 생각은 교사마다 다르다. 체벌 금지가 당연하다는 교사가 있는 반면 체벌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교사들도 있다. 체벌을 반대하는 교사들은 "오랫동안 체벌을 통한 교육이 시행되다 보니 체벌이 가장 효과적인 교육 수단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체벌을 해야 학생들이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은 후진적인 발상이다. 의식 수준이 높아진 만큼 체벌을 통한 교육방식도 개선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에 비해 교육적인 체벌은 이루어져야 한다는 교사들도 많다. 또 체벌이 법으로 금지되었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다. 올 8월 발표된 서울시내 중'고교 교사 120명과 학생 300명을 대상으로 한 '학생 체벌금지 및 체벌 대체방안에 대한 학생과 교사의 인식 연구'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사의 57.6%가 '체벌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체벌이 필요한 이유로는 '학생의 잘못을 반성하게 하기 위해서'(45.6%), '다른 학생들의 잘못을 예방하기 위해'(29.1%) 등을 꼽았다. 또 많은 교사들이 "정부의 체벌금지 조치 후 학생들의 태도가 불량해졌다"고 답했다.

한편 체벌이 법으로 금지된 후 학생이 교사의 체벌 장면을 촬영한 뒤 인터넷을 통해 고발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경기도 성남의 한 고교 교사가 학생 허벅지를 때리는 장면이 녹화된 동영상이 지난달 인터넷에 유포됐다. 동영상 공개 후 담당 교사에게는 체벌이 금지되었는데도 매를 들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또 올 5월에는 충청남도의 한 초교 교사가 학생을 체벌하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 파문이 일었다. 이에 대해 법을 어긴 교사도 문제지만 교사와 학생의 신뢰관계를 무너뜨리고 여론 재판을 받게 하는 동영상 유포 행위도 과연 정당한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교사'학생 모두 상생하는 길 찾아야

시민들은 다른 주장들이 혼재하고 있는 교육계를 우려 섞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교육계가 마땅한 해법을 내놓지 못한 채 학생 인권 신장과 교권 침해 방지 사이에서 사분오열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을 둔 김도진(44) 씨는 "학부모 입장에서 체벌과 학생인권조례 등을 둘러싼 교육계 논쟁을 보면 혼란스럽다. 교육경쟁력이 국가경쟁력이다. 교육정책이 시'도마다 다르게 추진된다면 경쟁력 확보는 요원하다. 서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기보다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교육계가 해법을 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중학교 다니는 아들을 둔 박성수(44) 씨는 "소모적인 논쟁을 하기보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학생과 교사가 모두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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