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택시기사 생활 파노라마로
"힘든 삶이지만 그래도 희망이…"
지은이가 택시기사 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을 펴낸 소설이다. 전작 '늪'을 통해 도박에 빠진 한 인간의 파멸과정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던 지은이는 이번에는 택시기사 생활에서 겪는 갖가지 사건과 사연을 버무려 현장감 넘치는 소설을 썼다.
이 작품은 요즘 대세를 이루는 소설작품과는 많은 면에서 질감이 다르다. 내면심리 묘사보다는 사건과 표면의 대화, 한겹 이면의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감추기보다는 직접 '드러내기' 방식을 주로 취한다.
지은이는 자신이 택시 운전을 시작한 이유를 '간단하다. 주머니에 돈이 한 푼도 없기 때문이었다. 핸들을 손에 잡지 않았다면 이미 낙동강에 몸을 던져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구질구질하게 살지 말고 깨끗하게 마무리하자. 그런 생각을 수없이 했기 때문이다. 택시는 나의 운명을 갈라주었다'고 밝힌다.
소설은 택시기사인 나의 하루하루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어제저녁에는 택시를 하고 처음으로 요금을 떼였다. 젊은 친구인데 술이 많이 취했었다. 목적지를 세 군데나 바꾸는데 이미 인사불성이었다. 신호를 받고 있는 찰나 무단으로 택시에서 내리고 만다.'
자정이 넘어 야간운전 중에 짙은 선글라스를 쓴 아가씨가 택시에 오른다. 서부정류장 앞에서 탄 아가씨는 '서부 정류장 가자'고 막무가내로 조른다. 우여곡절 끝에 내리게 했더니 이번에는 택시 앞문을 확 열고 들어와 '아저씨, 우리 팔공산 가요! 어때요?' 란다. 경찰신고까지 운운한 덕분에 겨우 내리게 했더니 육두문자를 뱉으며 사라진다.
택시 기사는 많은 사람을 아주 좁은 공간에서 만난다. 술냄새, 땀냄새, 향수 등 다양한 냄새와 온갖 욕지거리가 쏟아져 나온다. 오밤중에 성주댐 태워 달라고 하더니 빠져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손님도 있고, 이제 겨우 스무 살 먹은 청년이 오십이 눈앞인 운전사에게 담뱃불 빌려달라고 소리도 친다.
택시는 서로 이름도 성도, 사는 곳도 모르는 사람을 태우고 목적지로 향하고 있다. 10분 혹은 20분 길게는 1시간을 넘는 경우도 있다. 다시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은 이 시간 동안 가감 없이 민낯을 드러낸다. 그래서 택시는 무례하고 불쾌한 일이 벌어지는 공간이다. 택시비를 깎자는 사람, 화를 내는 사람, 농담을 하는 사람, 우는 사람, 끊임없이 훈계하는 사람, 욕을 하는 사람, 엉뚱하게 덤으로 돈을 주는 사람, 시비를 거는 사람, 나이 불문하고 무조건 반말을 해대는 사람, 다짜고짜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 등 가지각색이다.
조진복의 신작소설 '바퀴벌레'에서 문학적 향기나 정교한 소설적 장치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다만 그의 소설은 오늘 우리사회의 단면을 '정직하게 반영'한다. 아마 지은이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만 골라 썼을 것이다. 그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자화상은 부끄럽고 불쾌하다. 그래도 주인공은 희망을 안고 달린다.
'동대구역 건너편에 차를 붙인다. 얼추 내 앞에는 20여 대가 대기 중이다. (긴장 말어. 역 앞은 열차가 오면 순식간에 빠지니께)' -255쪽-
낙동강에 몸을 던지려고까지 생각했던 주인공은 이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우리 삶의 본질을 위로한다. 256쪽, 1만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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