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희준의 캐나다 편지] 캐나다 장터의 사람 사는 냄새

오랫동안 외국에 나와 지내다 보면 한국의 명절을 잠시 잊을 때가 있습니다. 추석을 맞이해도 여기서는 공휴일도 아니고 친인척이 가까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집에서 식구끼리 또는 가까운 이웃과 한국 음식을 마련하여 식사를 같이하곤 합니다. 다만 오전에 한국에 안부전화 한 통화로 귀성 전의 설렘처럼 안부를 전하고 명절 음식 준비와 그리운 식구들의 소식, 마지막으로 다시 헤어짐의 아쉬움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화 통화 후 한동안의 먹먹함이 가슴 시리도록 아픕니다. 요즘은 이런저런 핑계로 한국 통화 횟수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인터넷에 사진도 올리고 모든 것이 새로운 양 소식 전하기에 바빴습니다. 지금은 한국의 모든 것이 그리워져 매일같이 뉴스를 접하고 인터넷으로 한국 소식을 듣곤 합니다. 주말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나면 꼭 아이들이 라면을 먹자고 합니다. 한국에선 멀리했지만 외국에서 바라보는 TV 속의 라면은 얼마나 맛있어 보이는지 안 먹고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습니다.

얼마 전 캐나다에서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을 보냈습니다. 한국의 명절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나라의 명절이니 간단히 우리 식대로 음식을 준비하고 동네의 다른 한국 가족들이 김밥이니 떡볶이니 한국 음식들을 각기 만들어 와서 나름대로 파티를 열었습니다. 추석 때 한국에서는 송편을 꼭 먹듯이 여기에서는 칠면조와 호박파이를 꼭 먹습니다. 일반 닭고기에 비해 2, 3배 더 큰 칠면조를 요리하기란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갖은 양념을 속에 채우고 오븐에서 꽤 오랫동안 익힌다고는 들었지만 막상 시도해서 먹어보진 않았습니다.

이런 명절의 분위기도 느낄 겸 오랜만에 매주 토요일 오전마다 장이 열리는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에 다녀왔습니다. 항상 가면서 느끼는 거지만 우리나라에 있는 5일장과 상당히 흡사합니다. 꼭 농민만을 위한 시장은 아닙니다. 인근 해안가의 어부들도 싱싱한 수산물과 어패류를 가지고 나오고 주변의 식당, 빵가게, 커피하우스도 부스를 마련하고 음식과 음료를 팔고 가게 홍보도 합니다. 그리고 공예품 시장도 함께 겸하고 있어서 손으로 직접 짠 옷이나 카펫을 사거나 다양한 공예품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캐나다의 파머스 마켓은 지역에 따라서 규모가 많이 다른데 우리 동네의 파머스 마켓은 작고 소규모이지만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왕이면 내 지역, 내 이웃의 농부들이 농사지은 농산물을 직접 구입해주자는 이런 취지의 시장입니다. 대형마트보다는 과일이나 야채들의 모양이 깔끔하고 예쁘지는 않습니다. 농장에서 직송되고, 친환경 농산물이라는 것 때문에 인기가 많은 것이지요.

소비자들이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을 선호하면서 주말마다 열리는 파머스 마켓은 갈수록 인기가 높아집니다. 농부들이 직접 생산한 싱싱하고 신선한 제철 채소와 각종 공예품과 수제품들, 그리고 직접 구운 케이크나 쿠키 등이 싸고 질 좋은 덕분에 발 디딜 틈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곳입니다.

한국의 시장처럼 먹거리가 다양하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시장에 오면 먹거리가 제일 눈에 띕니다. 시장 입구에는 아주 익숙한 한국의 돼지갈비 냄새가 진동합니다. 얼마 전부터 친한 분이 한국식 바비큐를 판매하고 계십니다. 드디어 캐나다 시장에서도 한국식 갈비구이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처음 맛보는 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맛이 나는지 궁금해합니다.

반갑게 김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실내에 들어서 한국 액세서리를 판매하시는 최 사장님, 한국 음식을 판매하시는 장 사장님, 마켓 제일 안쪽에서 커피 전문점을 운영하시는 신 사장님과도 안부를 전합니다. 이곳에서 동네 주민들도 만나고 반갑게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고 하는 풍경에서 한국의 5일장과 똑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예전에 대구와 비교적 가까운 하양장날이 되면 살 것이 없어도 이리저리 장 구경을 하고 싶어서 식구들과 시장을 한 바퀴 돌곤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 사는 냄새를 느낄 수 있었고 마음이 넉넉해지는 기분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도 가격을 흥정하는 소리와 좁은 시장 골목길, 시끌벅적한 시장 안 소리로 잠시 하양장과 같은 분위기에 젖어봅니다.

khj0916@naver.com

지금까지 '김희준의 캐나다편지'를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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