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도깨비방망이

어린 날 할머니와 고모들이 우리들을 모아놓고 밤늦게 들려주던 옛날이야기들 중에 사람도 아니고 짐승도 아닌 도깨비라는 이상한 괴물이 자주 등장했다. 커다란 방망이 하나를 들고 무시무시한 형상으로 방망이를 휘두르면 안 되는 것이 없었다. 금 나와라 뚝딱 하면 금이 나왔고, 은 나와라 뚝딱 하면 은이 나와서 이야기를 백팔십도로 반전시키는 도깨비방망이의 위력은 대단했다. 도깨비의 기분에 따라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고 때로는 변신시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신이 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지만 도깨비방망이만 있으면 안 되는 것이 없었으므로 그것을 가지고 있는 도깨비란 괴물이 은근히 부럽기도 했다. 가지고 싶기도 했지만 무섭기도 했던 그 전설 속의 도깨비방망이가 지금은 도처에 없는 곳이 없다.

우리가 타고 다니는 차에, 가방에, 손에, 책상에 손가락만 움직이면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도깨비방망이의 진화는 너무나 무궁무진해서 우리를 숨조차 돌릴 수 없을 만큼 허덕이게 한다. 수시로 새로운 모델이 개발되어 더 좋은 품질 더 '새끈한' 디자인, 더 많은 기능을 가진 것들이 하루가 다르게 TV 광고를 타고 있다.

이런 초고속 정보망과 고성능 디지털기기는 우리의 모든 것을 감지하고 있다. 그야말로 귀신이 곡을 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차에 타면 내비게이션을, 책상에 앉으면 컴퓨터를, 외출을 하면 휴대폰을 손에 들고 가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일궈낸 문명의 결정체다. 하지만 이 위대한 우리의 업적 앞에서 나는 가끔씩 두려움을 느낀다. 옛날 공상과학영화에서 보았던 가상의 세계가 현실로 다가오고 도깨비방망이의 전설을 이미 뛰어넘어 버린 멀티통신기기의 등장은 우리들의 모든 생활을 압도하고 있다. 지하철에서도 버스에서도 밥을 먹다가도 누굴 만나다가도 우리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터치에 터치를 거듭한다. 앞에 있는 사람은 잠시 따돌려놓고….

문명의 이기에 길들여진 우리의 자화상이 너무 쓸쓸하고 공허하지 않은가?

우리는 이제 서로의 눈을 보고 대화하지 않고, 주먹질을 하고 코피를 흘리는 지극히 인간적인 싸움은 하지 않는다. 다선적인 멀티미디어의 다양한 기능들은 보이지 않는 얼굴을 하고 누군가에게 엄청난 상처를 줄 수도 있고 그를 파멸시킬 수도 있다.

인터넷이라는 가상세계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폭력은 선량한 사람들을 헤어날 수 없는 고통 속에 빠뜨리고 있다.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 가는 것일까. 달콤한 자본주의가 주는 짜릿한 쾌감에 젖고 미디어 문화가 주는 신속성과 편리함에 길들여져가는 감동이 없는 적막한 세상을 살아갈까 두렵다.

얼마 전에 발간된 스티브 잡스의 전기에 실려 있는 사진을 보면 그는 아직도 턱을 괴고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다. 잡스, 저승을 바꾸고 싶은가.

황 영 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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