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묵은 색시, 신개 안에서 장옷 고름 단다'는 속담이 있다.
시집갈 나이 다 넘도록 긴 세월 헛보내다가 혼인 날이 닥치고서야 허둥지둥 식장으로 가는 신개(가마의 평안도 사투리) 안에 앉아 장옷에 옷고름 단다는 풍자인데, 준비성 없음이나 다급해지고 나서야 손을 쓴다는 뜻이 담겼다. 요즘 박원순, 안철수, 한나라당, 민주당 뉘 할 것 없이 모두들 '신개 안에서 장옷에 고름 다는' 사람들 같다. 그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애절하게 젊은 청년들을 보듬고, 실업과 절망을 함께 애태우며 챙겼던가.
'제 배부르면 평안감사가 조카처럼 보인다'는 말대로 이제까지 정치권은 자기네 배부른 것만 알고 학비에 눌린 수백만 대학생들과 백수 청년들의 세(勢)쯤 우습게 보아왔다. 한마디로 '배부른 소 여물 보듯' 했던 그들이었다. 간간이 자살 등 청년 계층의 사회문제가 이슈로 떠오르거나 촛불이 켜지면 화들짝 놀라 챙기는 척하다가 '메기 잔등에 뱀장어 넘어가듯' 미끄러져 넘어가 버리면 도루묵, 그게 끝이었다. 그러다 서울시장 선거 한판 치르면서 '등록금을 반값으로 내려주마'며 솜사탕 공약을 꺼내 들고, '가난한 집 아이 학비에 보탰으면 좋겠다'고 언제 쪽박이 될지 대박이 될지 알 수 없는 주식도 내놓았다.
반값 허풍으로 시작된 등록금 공약은 이미 찬물에 뭐 줄어들듯 10~12% 선으로 정리, 사탕발림 거짓말이 됐다. 신개 안에서 옷고름 달듯 했으니 마무리 바느질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10% 삭감도 5%(7천500억 원)는 국민 세금으로 때우고 나머지 5~7%는 대학이 다 감당하라는 조건이다. 대학마다 5~7% 깎으려면 웬만한 대학은 매년 100억 원 가까이 운영 예산이 줄어든다. 결국 적자 덜 보려고 시설과 기자재가 낡아도 계속 고물로 때워 나갈 것이며 냉난방비 아끼느라 춥고 더운 강의실이 될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줄어든 예산 메우려다 보면 학생들에게 이런저런 교육의 질 피해로 되돌아가기가 쉽다. 자칫하면 10% 감액 받고 11% 손해 볼 수도 있다. 그나마 깎아줄 10%도 나눠 보면 한 달 6만 7천 원 정도다. 과연 그 돈(아이들에겐 적잖은 돈이지만)으로 청년 대학생들의 가슴에 '의원님들 고맙습니다'는 감동을 울려줄 것인가.
박원순 시장은 한 술 더 떴다. D대학교에 찾아가 '여러분이 어렵게 등록금 인하 투쟁을 해왔는데 왜 등록금 철폐를 위한 투쟁은 하지 않습니까?'라고 했다. 등록금 철폐를 위해 왜 투쟁하지 않느냐고? 의견 제기나 협의가 아니라 '투쟁'? 등록금 철폐하자면 투쟁 대상은 세금 내는 국민들이고 그 국민은 곧 세금 내는 아버지고 어머니며 장학금 대주던 착한 후원 기업인들이다. 부모와 장학금 주는 기업인을 상대로 공짜 학비 다 대라는 '투쟁'을 선동해? 사상과 사람됨이 의심되는 나쁜 선동가가 아닐 수 없다.
등장할 때부터 긴가민가했던 좌파 성향의 본색이 '투쟁' 선동의 언동 속에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화합의 정치와 파이부터 키운 뒤 나눠 쓰는 상생 경제는 외면한 채 국회 폭력과 FTA 반대를 일삼고, 근면 자조를 가르쳐야 할 청년들에게는 부모와 기업인을 향해 투쟁하라고 선동하는 것은 분명 이념의 악(惡)이다. 투쟁을 선동한 날 특강의 제목이 우습게도 '21세기 리더의 자격'이었다.
박원순의 21세기 리더는 자기 나라 젊은 청년들에게 자립 정신 대신 캥거루 의식을 부추기는 선동가여야 한다는 것인가. 서울시장이면 청년들 모아놓고 투쟁 선동할 시간에 서울시 변두리 쪽방촌 서민의 삶을 한 번이라도 더 찾아가 챙기는 데 열정을 쏟아야 옳다. 자신이 진정한 21세기 리더라면 '60만 개 일자리는 방글라데시, 베트남 사람들에게 내주고 일자리 없다고 하면 안 된다. 힘든 일도 참고 해내는 인내와 땀으로 자신의 미래를 열어라.' '어른들도 선동 정치 끊고 경제부터 살려가겠다'고 말해야 한다.
박원순뿐만 아니다. 여의도의 공약(空約)의 달인들도 청년들을 속이고 갖고 놀지 말라. 청년들은 우리의 미래고 희망이다. 누가 투쟁하라 선동한다고 허투루 거리로 나설 바보도 아니다. 되지도 않을 반값 같은 걸로 속이려 들지 말고 1%를 깎아주더라도 진정성을 보여라. 기성세대의 거짓 선심은 세대 갈등만 키운다. 선거판이 닥치자 '씻나락으로 떡 해먹자'고 선동하고 '묘목 뽑아 군불 때기'식 포퓰리즘 아부로 젊은 청년들을 홀리며 표 계산이나 하는 당신들은 갓 피어나는 꽃망울의 씨방(房)을 파먹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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