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르포] 대구 시내버스 심야·새벽시간 '멋대로 운행'

막차, 종점 가지않고 "모두 내려라" 새벽엔 빈 정류장 정차 '거

이달 19일 밤 대구 중구에서 달서구 방향으로 가던 시내버스의 기사가 달서구 월곡네거리 정류소에 이르자 "여기까지만 운행하니 모두 내리라"고 소리쳤다. 일부 승객들이 "왜 종점까지 가지 않느냐"고 항의했지만 버스기사는 묵묵부답. 버스는 종점까지 7정거장이 남았지만 10여 명의 승객들이 내리기가 무섭게 불을 끄고 쏜살같이 사라졌다.

승객 서재환(27'경산시 옥산동) 씨는 "버스에 탈 때 어디까지 운행한다는 안내도 없이 갑자기 내리라니 황당하다"며 "버스기사가 오히려 도중 하차 여부를 왜 확인하지 않고 탔느냐며 윽박지를 때도 있다"고 불평했다.

해마다 대구 시내버스 재정지원금 규모는 늘어가고 있지만 서비스 질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시내버스 지원금은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재정지원금 840억원, 대당 5천400만원으로 서울시의 2천215억원과 4천100만원, 부산시의 858억원과 3천600만원보다 대당 지원금이 훨씬 많다.

◆아찔하게 질주하는 곡예버스

19일 저녁 북구 무태조야동 호국로. 937번 시내버스가 다른 차를 앞지르며 과속질주했다. 버스가 제한속도인 시속 70㎞를 오르내리며 과속하자 승객들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 좌석 손잡이를 꽉 붙잡았다. 대학생 신주현(24'여) 씨는 "오후 10시 이후에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날이면 기사들이 오금이 저릴 정도로 과속해 가슴을 졸여야 한다"고 했다.

새벽에 운행하는 첫차는 반대상황이 벌어진다. 21일 오전 달서구 도원동에서 북구 검단동까지 운행하는 한 시내버스. 승객이 없는 정류소에서 2, 3분씩 정차하며 시간을 때우고 시속 20~30㎞로 천천히 달린다.

승객 정모(52) 씨는 "도로가 한산한데도 버스는 느릿느릿 거북이걸음을 한다"며 "새벽에 급한 일 때문에 버스를 타는데 정말 울화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시내버스들이 제멋대로 운행을 하는 데는 노선 조정 및 관리를 맡고 있는 대구시의 책임이 크다. 막차의 경우 버스 운행 시간대만 확인할 뿐 실제 승객을 언제 태우고 내렸는지를 파악하지 않는다.

도로 상황과 승객 수요에 상관없이 버스 배차 시간이 일정한 점도 문제다. 버스기사들이 15분 이상 일찍 종점에 도착하지 말라는 시의 지침을 지키기 위해 일부러 서행운전을 한다는 것. 이 때문에 시는 3년 전부터 탄력배차제 도입 등을 검토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버스기사 김모(45) 씨는 "새벽에는 배차 시간에 맞추기 위해 아예 버스를 도로에 세워뒀다가 출발하는 경우가 잦다. 이 경우 버스 도착 안내 단말기 상에는 전 정류소에서 출발했다는 버스가 15분 이상 기다려도 안 오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털어놨다.

◆단말기 고장도 잦아

교통카드 단말기로 인해 접수되는 민원도 끊이지 않고 있다. 교통카드 단말기를 유지 관리하는 ㈜카드넷에 따르면 한 달 평균 접수되는 고장 신고는 150여 건에 이른다.

하차 단말기에 교통카드를 찍어야 환승 시 추가 요금이 부과되지 않지만 단말기에 교통카드를 찍지 않더라도 추가요금이 부과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 지난 7월 시내버스 요금 인상 당시에는 단말기 시스템 오류로 3만9천134건이 추가 결제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시내버스기사 경력 15년째인 박모(49) 씨는 "교통카드 단말기가 고장 나 승객과 실랑이를 벌이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며 "교통카드 인식이 잘 안 되거나 스피커 볼륨이 적은 것 등 고장이 끊이지 않아 올 들어서만 단말기를 7대나 교체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대구시와 ㈜카드넷 관계자는 "승차거부와 과속에 대해서는 회사 측이 정기적으로 자체 교육을 하고 있다"며 "교통카드 단말기 등 시스템 문제에 대해서는 계속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백경열기자 bky@msnet.co.kr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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