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풍자

풍자(諷刺)는 신랄해야 제 맛이다. 신랄함이 풍자의 자양분인 셈이다. 정치든 사회든 종교든 그 영역을 가리지 않는 게 풍자의 특권이라면 대상을 비틀고 꼬집는 강도가 셀수록 더 먹혀드는 게 풍자의 속성이다. 풍자만큼 직접적이고 원초적인 표현 수단을 찾기란 쉽지 않다.

영미문학에서 풍자문학의 장르로 자리 잡은 세타이어(satire)는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시대를 초월해 유행했다. 라틴어 세티라(satira)에서 유래한 이 말은 '여러 음식을 담은 접시'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올려놓고 조롱하고 경멸함으로써 카타르시스에 도달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풍자도 과하면 욕이 되고 결국 싸움이 된다. 세타이어는 풍자를 통해 부조리한 상황을 치유하고 구제하는 것이 본래의 의미다. 하지만 단순히 개인적 불만이나 대중 심리에 영합하는 선정적인 수단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2004년 참여정부 시절 한나라당 의원들의 풍자 연극이 그런 케이스다. 그해 8월 청와대 홈페이지에 박근혜 대표의 성적(性的) 패러디 사진이 게재돼 야당이 반발하면서 정국이 경색됐다. 그러자 한나라당이 반격으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욕설과 성적 비하 대사가 담긴 풍자극을 무대에 올렸다. 정부의 과거사 문제와 수도 이전 등 정치 현안을 비꼬아 풍자하면서 "육시럴 ×" "거시기 달 자격도 없는 놈" 등 육두문자 대사가 쏟아져 파장이 컸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온 사회가 신랄한 풍자극 한마당이 된 형국이다. 정치권을 비롯해 재벌, 종교계, 군대, 연예계 등 여기저기서 비꼬고 물고 뜯느라 정신없다. 급기야 한 국회의원이 개그맨을 국회의원 집단 모욕죄로 형사 고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회의원 되려면 여당 수뇌부와 친해져 공천받고 여당 텃밭에서 출마하면 된다"는 개그가 화근이다. 정치인의 행태가 개그의 단골 소재임에도 "정치인이 개그맨 고소한 것은 진짜 개그"라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정곡을 찌르는 신랄한 풍자는 서로의 공감대를 확인하는 소통이자 윤활제다. 그러나 무차별적인 욕설과 모욕은 풍자가 아니다. 풍자가 신랄함을 가장한 저속하고 원색적인 욕설의 잔치가 되거나 재치 있고 해학적인 위트가 빠진 풍자는 배설에 불과할 뿐이다. 이제는 제대로 풍자하는 법과 풍자를 여유롭게 수용하는 배포를 기를 때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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