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높지 않아도 신선이 살면 명산이요, 물이 깊지 않아도 용이 살면 신령스러운 하천'이라 했다. 가야연맹 건국설화에 대가야 시조의 어머니로 알려진 여신 정견모주(正見母主)가 살었던 가야산의 깊은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두 물줄기가 고령읍내를 휘감아 한곳으로 모여 회천(會川)이 된다. 회천은 성주군의 가야산(해발 1,430m)에서 발원한 대가천(大伽川)과 소가천(小伽川), 합천군 야로에서 발원한 안림천(安林川:야천)이 한곳으로 모이는데, 여러 개의 한천이 한곳으로 모인 하천이라고 모듬천 또는 회천(會川)이라 부른다.
◆대가천
가야산의 한 줄기인 단지봉(1,327m'김천시 증산면)과 가야산에서 발원한 대가천은 북쪽으로 흐르다가 증산면 유성리에서 지류인 옥동천과 합한 후 물길을 동쪽으로 바꿔 성주댐을 만난다. 물길은 다시 성주 독용산(955.5m)의 북사면에서 발원해 북동쪽으로 흐르는 금봉천과 화죽천, 계정천 등 지류를 차례로 합하면서 수륜면 남은리를 지나 고령읍에서 회천에 합류한다.
물길 왼쪽은 산지와 인접해 거암으로 제방을 이루고 있으며, 오른쪽은 국도 33호선이 연결돼 있다. 산이 있는 좌안은 관목과 교목이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하천 바닥은 기반암으로 중간쯤은 물이 적고 돌과 자갈이 많으며 강변에는 하얀 호박돌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대가천은 발원지에서 흘러내린 물이 수도암과 청암사를 지나며 울창한 수목과 옥류가 어우러진 불령동천(佛靈洞天)을 만든다. 다시 동남쪽으로 흘러 성주에 접어들면 선바위, 배바위 등의 자연경관을 만들고 성주댐으로 흘러들어 성주호가 되었다가 다시 가천에서 큰 계곡을 이룬다. 대가천 계곡이다. 이 계곡은 물이 맑을 뿐 아니라, 웅장하고 힘찬 가야산의 절경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여름철이면 최고의 휴양지로 알려지면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소가천'안림천이 모인 회천
가야산 남동쪽 사면의 유역 분지에서 발원한 소가천은 고령군 덕곡면 상비계곡을 거쳐 동류하다 덕곡저수지를 형성하고, 그곳에서 덕곡면 원송리와 본리리 경계를 따라 흐르는 오리천과 덕곡면 예리에서 합류해 남동쪽으로 흐른다. 회천과 합류하는 하류에는 범람원이 넓게 형성돼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으며, 좌안으로 국도 33호선이 지나가고 있다. 고령 지역의 소가천은 회천과 합류하는 종점 부분에 해당된다.
가야산 해인사 골짜기에서 발원한 안림천은 합천군 가야면과 야로면을 거쳐 남류하며, 고령군 쌍림면에 유입될 때까지 감입곡류(嵌入曲流)한다. 하류에서는 남서부의 낮은 산지에서 흘러드는 합가천'박실천'평지천과 미숭산(美崇山'734.3m)의 남동 사면에서 발원하는 월막천의 물을 모아 고령읍 남쪽에서 대가천에 합류한다.
안림천은 경남 합천지역에서는 가야천 또는 야천이라 부른다. 이 일대 하천을 따라 국도 26호선과 국도 33호선이 지나가고 있다. 안림천이 흐르는 쌍림면 신촌리에 벽송정, 송림리에 매림서원이 있다. 안림천 유역에서 재배되는 딸기는 맛과 품질이 뛰어나 전국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으며, 주민들의 소득 증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최근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겨울 딸기가 첫 출하됐다.
◆회천의 특산품인 누치와 은어.
고령 지산동고분의 대가야 왕릉에 대해 1977년 11월 발굴조사가 이뤄졌다. 조사 결과 으뜸돌방과 딸린돌방을 비롯해 주위에 32개의 순장덧널을 가진 왕릉임이 밝혀졌다. 40명 이상이 한 명의 왕을 위해 함께 묻힌 것이다.
이 왕릉에는 '고령양식'으로 불리는 다양한 종류의 토기류, 철기류, 말갖춤, 장신구 등 대가야를 대표하는 유물이 쏟아졌다. 특히 이 왕릉에서 낙동강에서 가장 많이 서식하는 '누치' 뼈가 15개의 토기 안에서 확인돼 흥미를 일으켰다. 누치는 잉어과에 속하는 민물고기로, 잉어와 비슷하지만 잉어보다 머리가 둥글고 큰 것이 특징이다. 이 고기는 중국 흑룡강 등 큰 강에 서식하며, 우리나라에서는 낙동강 수계의 하천에서 가장 많이 자란다. 1년에 6∼8㎝ 정도 자라 성어가 되면 50㎝ 정도까지 자란다. 이 같은 누치 뼈가 왕의 무덤에서 확인된 것으로 보아 회천은 누치를 잡는 어업이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1998년 대가야박물관을 건립하기 위한 발굴조사 당시 대가야시대의 무덤이 많이 조사됐다. 그 가운데 28호 석곽묘에서는 많은 토기와 철기를 비롯해 무려 224점이나 되는 어망추가 출토됐다. 어망추는 좁고 긴 모양의 구덩식 돌덧널무덤의 짧은 벽 쪽에 몰려 있었는데 그 양으로 보아 큰 투망에 달았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처럼 어망추가 다발로 고분에 부장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대가야의 왕을 위해 열심히 투망질을 하며 철 따라 은어와 누치를 잡던 어느 어부의 무덤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 개실마을은 영남학파의 거두 점필재 김종직(佔畢齋 金宗直'1431~1492) 선생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일선김씨 문중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김종직 선생 부친 강호 김숙자(江湖 金叔滋'1389~1456) 선생은 1442년부터 1447년까지 5년간 고령현감으로 재임했다. 김숙자 선생은 고령현감으로 재임할 당시 대가천 은어(銀魚)와 얽힌 사연이 있다. 당시 고령'성주지역을 흐르는 대가천에서 나는 은어는 대궐의 진상품이었다. 이 때문에 성주 사람들이 진상을 핑계로 해마다 고령으로 몰려와 불법적인 은어잡이에다 강제로 밥을 짓게 하고 닭고기와 채소를 공급하게 하는 등 고령 사람들에게 피해를 줬다. 그러나 대부분 현감들은 성주목사의 위세에 눌려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김숙자 선생은 병사를 시켜 그물을 빼앗고 은어잡이를 하던 관리들을 매질하여 고령 밖으로 쫓아 버렸다. 성주목사는 이 사건으로 "진상에 차질이 있다"며 경상감사에게 "고령에서 다시 은어를 잡을 수 있도록 시정해 달라"고 청했다. 이에 김숙자는 "성주가 고령보다 은어를 잡을 수 있는 구역이 더 넓으며, 강자가 약자를 침탈하고 있다"며 그간의 자초지종을 경상감사에게 보고해 성주목사에게 사과를 받아내고 잘못된 악습과 폐단을 바로잡았다고 한다.
이처럼 회천에는 누치와 은어가 많았으며,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서 은어를 이곳 특산품으로 기록하고 있다. 요즘도 회천에는 다양한 종류의 물고기가 있어 이를 먹이로 삼는 수달의 움직임도 심심찮게 포착될 정도로 청정 수질을 유지하고 있다.
◆회천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개발사업
고령지역의 젖줄인 회천은 가야산에서 발원한 대가천과 소가천을 거쳐 합천지역에서 내려오는 안림천과 합류한 후 낙동강과 만난다. 낙동강 합류지점인 연리지역은 경상남'북도의 경계지역으로 하천 폭이 좁아 수년 전만 해도 상습 수해지역이었다. 농경지가 하천바닥과 평면을 이뤄 "메기 하품하면 물 담는 지역이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았다. 그러나 낙동강 연안 개발사업과 더불어 슈퍼제방을 설치한 후 웬만한 비에도 수해 걱정이 없어 명품수박 생산지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이곳에서 상류로 1㎞ 정도의 우곡중학교 앞 회천은 1급수답게 맑은 백사장 모래에서 생산되는 재첩이 많아 여름철만 되면 재첩 줍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임진왜란 때 윤규 선생이 왜적의 침략으로 분에 못 이겨 달을 보고 한탄했다"는 우곡면 월오리 마을 앞 회천변에는 그를 추모하는 비와 정각이 한 폭의 병풍처럼 단장돼 있다. 이곳 회천변을 따라 계속 이어지는 국가지원지방도 67호선은 달성군 구지면 대암에서 우곡을 거쳐 고령을 지나 성주군 용암으로 연결된다. 성주'고령에서 경남 마산, 부산지역으로 연결된 주요 통로이다.
지난해 우곡교 개통과 더불어 많은 교통량이 늘어나면서 지역발전이 가속화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일부구간은 굴곡이 심하고 차량 교행이 어려울 정도로 도로폭이 좁은 곳이 남아 있다. 군은 70억원의 사업비를 확보해 내년부터 고령구간 21.5㎞에 대해 확장공사에 나설 방침이다. 또 가야문화권 개발사업과 연계해 유적지 정비사업과 회천의 생활체육공원 확충에도 나설 계획이다. 군은 또 회천변에 4.4㎞ 순환형 자전거 코스 공사를 벌이고 있으며, 회천변 경관 조성을 위해 둔치에 청보리 2㏊를 파종하고, 어부실지역은 코스모스 등 경관작물 10㏊를 파종해 내년 봄이면 더욱 아름답고 활기찬 관광 고령의 이미지를 부각시킬 방침이다.
고령'정창구기자 jungc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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