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구(19)는 '배달맨'이다. 분식에서부터 중국 음식, 족발과 피자 배달이 그의 일이다. "제가 오토바이를 하도 잘 타서 친구들이 배달의 신(神)이라고 불렀다니깐요. 하하." 상구의 얼굴은 이렇게 웃고 있어도 마음은 항상 무겁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은 대부분 아픈 엄마의 병원비로 들어갔다. "공부요. 내가 일해서 엄마 병원비 보태고, 세 식구 생활비를 대야 하는데 공부는 언제 합니까?" 하지만 간암을 앓았던 엄마는 2년 전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이제 아빠가 아프다.
◆아버지의 사고
22일 오후 대구의 한 대학병원 앞.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때문에 기자는 목도리를 칭칭 감고 갔는데 상구는 얇은 점퍼 하나만 걸친 채 거리를 걸었다. "두꺼운 점퍼가 없어요. 비싸잖아요. 에이, 올겨울에는 추워서 배달 일은 못하겠어요." 그가 어깨를 잔뜩 움츠리며 아빠의 휠체어를 밀었다. 아버지 한진재(56) 씨는 뇌종양 환자다. 지난달 뇌종양 진단을 받고 3㎝짜리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까지 받았다. 혼자서 걸음도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아버지 곁을 지키는 것은 상구다. 병에 걸린 엄마를 위해 5년 동안 병간호를 했던 아버지는 자신의 몸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돈 때문이죠 뭐. 아빠가 머리 아프다고 해도 MRI 이런 검사하면 돈이 많이 드니까 병원에 가는 것을 싫어하셨어요."
한 씨는 10년 넘게 공사판을 돌아다니며 돈을 벌었다. 새벽같이 동부정류장 인력 시장에 가서 일감을 찾았고 일당이 나오는 공사장이면 어디든지 갔다. 비가 오거나 날씨가 추워지면 일감이 떨어졌기 때문에 일하기 좋은 봄'가을에 더 열심히 일해야 했다. 그러다가 2009년 공사장에서 큰 사고를 당했다. 공사 현장에 세워둔 쇠파이프가 넘어지면서 한 씨를 덮친 것이다. 사고가 난 뒤 한 씨가 공사장 관계자에게 피해 보상을 요구했지만 "용역 업체에서 고용한 직원이니 우리가 보상할 의무가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그 사고 이후 한 씨는 온몸에 경련이 일어나고 다리를 제대로 가누기 어려워 공사장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다. 그리고 2년 뒤 병원을 찾았다가 갑작스레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병원이 싫어요"
상구는 병원을 아주 싫어한다. "병원 냄새가 싫어요. 지긋지긋해요." 병원은 상구에게 나쁜 추억으로 가득한 곳이다. 엄마를 잃은 곳도 병원, 아빠가 병 때문에 고통을 받는 곳도 병원이다. 기침하는 엄마,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 엄마, 인공호흡기를 꽂고 있는 엄마…. 상구가 기억하는 엄마는 항상 아픈 모습이었다. 중학교를 중퇴한 뒤 하루에 12시간씩 배달 알바를 해서 100만원을 벌면 절반 이상이 엄마 병원비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막노동을 해 번 돈까지 간병인 인건비와 입원비 등으로 내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거의 없었다. 상구는 엄마가 좀 더 오래 살기를 바랐다. 위궤양과 간경화, 간암 등 큰 병을 달고 살았던 엄마였지만 엄마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큰 힘이 됐다. 그러나 2009년 9월 4일, 평범한 가을날은 엄마의 기일이 됐다. 상구에게도, 아빠에게도 아무런 유언조차 남기지 않고 엄마는 눈을 뜬 채 세상을 떠났다. 엄마의 침대 옆에 서 있었던 아빠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고 간병인이 엄마의 두 눈을 감겨줬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 상구의 마음은 텅 비었다. 차가운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었다. "그래도 아빠가 있으니까 혼자는 아니잖아요." 하지만 엄마가 떠난 지 반 년도 채 지나지 않아 아빠가 공사장에서 사고를 당했고 지난달에는 뇌종양 진단을 받고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나쁜 병마는 상구 가족을 지긋지긋한 병원으로 다시 불러들였다.
◆"빨리 병원을 나가고 싶어요"
2주 전 뇌종양 제거술을 받은 아버지는 상구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다. 혼자 걸음을 내딛는 것도 힘들어 상구가 없으면 혼자 화장실도 갈 수 없을 정도다. 이 때문에 상구는 얼마 전 취업한 고무공장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다. 아버지 병간호 때문에 자꾸 공장을 비워서다. "아빠가 아프니까 내가 간호해야 하잖아요. 내가 돈을 벌어야 아빠 병원비도 내는데 그렇다고 아빠를 혼자 둘 수도 없고." 상구 가족은 기초생활수급자 가구지만 상구가 근로 능력이 있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한 달 생계비 명목으로 30만원을 지급한다. 이 돈으로 400만원이 넘는 병원비를 낼 수 없어 관할 구청의 도움으로 300만원의 긴급의료지원비를 받았다.
하지만 문제는 앞으로 발생할 수술비와 생활비다. 아버지는 앞으로 뇌종양 수술을 몇 차례 더 받아야 하지만 수술비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월세 18만원짜리 집은 다섯 달째 방세가 밀린 상태고 요즘 치솟는 기름값 때문에 기름 보일러를 돌릴 수 없어 올겨울을 냉방에서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구는 긍정적이다. "그래도 나는 아직 젊잖아요. 두꺼운 점퍼 하나 사서 다시 배달 일이라도 해야죠. 이제 내가 '가장'이잖아요."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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