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중학교 2학년이다. 짧고 굵은 사춘기를 지나며 '인생 뭐 별거 있나'를 입에 달고 다닐 만큼 제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인생관을 갖게 됐다. 초등학교가 끝날 무렵 시작된 사춘기를 겪으며 '세상만사는 온통 귀찮은 것투성이'라는 진리(?)에 도달했다. 공부는 안 하고 빈둥거린다며 핀잔하는 어머니를 대하며 처음에는 짜증과 화를 내다가 어느덧 "예, 예" 하며 건성으로 대답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런 A가 사춘기 터널을 지나며 고민 속에 빠졌다. 세상사를 귀찮아하지 않는 종족들이 존재하며, 언젠가 그들과의 경쟁에서 밀려나 아무것도 마음대로 못하고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고민이다.
B는 대학교 졸업반이다. 엄밀히 말하면 '지방대 복학생 졸업예정자'다. 이 짧은 수식어 속에 B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지만 한 반에 서너 명도 가기 힘들다는 서울 쪽 대학은 엄두도 못 냈다. 일찍 군대 갔다오면 취직 준비하기 좋다기에 1학년 마치자마자 입대했다. 군대가 체질인가 싶을 만큼 편해졌을 때 다시 대학으로 돌아왔다. 세상에 겁날 게 없었는데 세상은 무서운 것투성이임을 깨닫게 됐다. 남들이 "어~ 그래!" 하는 직장만 들어가면 다시 세상이 만만해질 것 같다.
C는 직장 생활 10년차를 바라보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3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뭐 하나 제대로 한 게 없는 듯하다. 공부도 그럭저럭 했고, 고만고만한 회사에 들어와 특별히 모나지 않을 정도로 그만저만하게 생활했다. 상사에게 "일 좀 제대로 해라"고 핀잔받을 때면 소주 한잔 기울이며 온갖 푸념을 늘어놓았고, 가끔 친구들 만나 술잔을 나눌 때면 '세상사 다 이렇지 뭐. 이 정도면 잘 사는 거야' 하고 스스로 위로했다. 어린이집 다니는 딸의 재롱을 볼 때면 일상의 작은 행복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10년 뒤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슬슬 장사라도 알아봐야 하나, 자격증을 미리 따둘까 하는 고민에 자주 빠진다.
D는 중소기업체 간부다. 마음은 여전히 이팔청춘이지만 40대 후반을 넘기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이마는 어느새 정수리와 구분이 안 될 정도가 됐고, 목욕할 때마다 배에 힘을 주지만 출렁이는 뱃살을 감추기엔 역부족이다. 젊은 부하 직원들과 술 한잔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무슨 일들이 그리 많은지 회식자리 한 번 갖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내가 젊었을 때는 저러지 않았는데'를 입에 달고 산다. 맏이는 대학생, 막내는 고 3이다. '가족끼리 놀러다닐 때가 참 좋았는데' 싶어서 어느 날 가족여행을 제안했더니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10년 뒤엔 어떤 모습일까? 예전엔 꿈이 있었는데'라며 푸념한다.
E는 얼마 전 식당을 열었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무슨 장사냐며 친구들이 핀잔을 줬지만 그래도 부러운 눈치다. 남 밑에서 일하다가 내 사업을 시작하면 뭐든 뜻대로 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세상에 돈 나갈 일이 이렇게 많은 줄 새삼 깨달았다. 손님은 점심때 잠깐 북적거릴 뿐인데, 속 모르는 친구들은 장사 잘된다며 한턱 내란다. 들어오는 돈은 깨알인데 가게 월세, 식당 아줌마 월급, 재료비 등등 나가는 돈은 호박 구르듯 나간다. 그나마 몇 푼 안 남은 퇴직금 다 날릴까 봐 걱정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생은 철 들면서부터 걱정과 고민투성이다. 하지만 늘 그럴까? 왜 그 나이에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찾지 못할까? 일본의 원로작가인 사토 아이코가 쓴 '마흔, 이렇게 나이 들어도 괜찮다:행복하고 유쾌하게 나이 드는 지혜'에 이렇게 적혀 있다. '40대-아직은 당당하게 어깨를 펴도 좋다. 50대-살 만하고 재미있는 일상이 너무 많다. 60대-세상이 변하면 나도 달라져야 한다. 70대-내 의지대로 움직이며 선택하고 싶다. 80대-자연스럽게 세월의 흐름에 나를 맡긴다.' 돌아보면 어제가 좋았고, 작년이 그립고, 5년 전을 떠올리며 흐뭇해지고, 10년 전은 행복했다. 10년 뒤에 지금을 보면 역시 그럴 것이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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