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일본 프로야구계는 두 가지 굵직한 사건으로 야구 팬들은 물론 일본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구단주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7년 만에 일본 프로야구의 최종 승자를 가리는 일본시리즈에서 우승한 것과 자타가 공인하는 일본 프로야구계의 최고 인기 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내분 사태다.
주니치 드래곤스를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누르고 패권을 차지한 지난 주말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트위터에 "해냈습니다! 감독'선수'스태프 여러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올렸다. 2004년 시즌이 끝날 무렵 손 회장이 유통업체인 다이에 그룹으로부터 인수한 호크스는 73년 역사를 자랑하는 팀으로 그동안 퍼시픽리그 우승 16회, 일본시리즈에서 4회 우승했다. 하지만 소프트뱅크로 이름이 바뀐 뒤로는 올해 처음으로 일본시리즈 우승이라는 감격을 맛본 것이다.
호크스는 지난 7년간 곡절이 많았다. 오 사다하루(왕정치) 감독의 위암 투병으로 구단의 전력이 크게 떨어지고 팀 전체가 흔들렸다. 2008년 시즌에는 리그 최하위로 급전직하했다. 그런 팀이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일본 최강자로 재기한 것은 선수와 감독, 구단이 혼연일체가 돼 전의를 불태운 결과지만 손 회장의 리더십이 한몫을 했다는 평가다. 손 회장은 왕 감독의 건강을 고려해 부사장, 이사회 회장으로 잇따라 승진시켜 경영의 전권을 맡겼다. 야구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전문가를 믿고 자신은 뒤에서 후원자 역할에만 충실했다. 계산하지 않는 '무계산의 리더십'인 것이다. 구단주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원, 때가 되기를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아는 뚝심이 결국 팀의 면모를 일신시켰다.
삼성 류중일 감독의 '형님 리더십'이 올해 한국 야구의 상징적 화두라면 손정의 회장의 챔피언 리더십은 일본 야구의 판세를 뒤흔든 원동력이었다. 꼴찌라도 끝까지 믿고 맡기는 두둑한 배짱이 일군 결과다. 두 팀 모두 결과에 초조해하거나 안달하지 않았다. 농부가 공들여 밭을 간 후 결실은 하늘의 뜻에 맡기고 기다리는 자세다. 대나무를 심으면 처음에는 거의 성장세가 눈에 띄지 않지만 4년이 지나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반면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거꾸로 갔다. 구단주가 구단 경영에 일일이 간섭하고 통제했다. 그럼에도 요미우리는 추락을 거듭했다. 성적이 나빠 구단주가 팔을 걷어붙인 것인지, 구단주가 팀을 믿지 못하고 일일이 간섭하면서 이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인지 생각해 볼 부분이다. 급기야 코치 선임을 둘러싸고 회장과 구단대표가 충돌해 해고 사태까지 벌어졌다. 교진(巨人)은 일본 프로야구의 대명사로 통할 만큼 늘 팬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아온 팀이다. 그런 만큼 성적지상주의가 선수와 감독은 물론 구단 스태프들을 짓눌렀다. 또 늘 외압에 시달렸다. 구단주인 와타나베 쓰네오 요미우리신문 회장과 기라성 같은 OB들의 간섭과 참견이 그 어느 팀보다 심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비단 승부의 세계가 아니더라도 건강하고 이상적인 리더십과 전횡이 어떤 상반된 결과를 낳는지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미 FTA 국회 처리를 놓고 여야가 극한투쟁을 벌이면서 전대미문의 최루탄 투척 사태까지 벌어졌다. 미국의 정치 전문지인 폴리티코는 "미국 의회보다 더 망가진 곳이 최소한 한 군데는 있다"며 조롱했다. 이는 정책 결정의 오류 문제가 아니라 국가 리더십의 부재가 빚은 결과다. 야당은 여당을 '매국노'라며 비난하고 여당은 야당의 반대가 터무니없는 정치 공세라며 불신할 경우 어떤 혼란과 국가적 손해를 부르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손정의 회장은 우승한 다음 날 그룹 전 직원에게 보낸 e메일에서 이렇게 말했다. "뜻을 같이하는 동료와 힘 모아 반드시 달성한다는 생각으로 일하면 실현 못 할 것은 없다." 단결과 뚜렷한 목표의식은 그 어떤 장애물도 뛰어넘는 힘이 있다. 반대로 분열과 혼란 속에는 그 어떤 기적도 일어날 수 없다.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주인공 남이는 "바람은 계산하는 게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라는 대사를 남겼다. 좌'우의 극한 가치 대립과 보수'진보 간 불신이 판을 치는 어지러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의미로 다가오는 말이다.
徐琮澈/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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