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 연출과 배우, 스태프 등 연극 제작진은 선정된 대본을 중심으로 작품분석을 시작한다. 관객도 마찬가지다. 연극을 관람하면서 혹은 관람이 끝난 후 다양한 방법으로 나름대로 작품을 분석한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견해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표현한다. 이는 마치 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맛보고 난 후에 그 음식에 들어간 재료와 요리방법 등을 분석해서 예측하는 미식가의 행동처럼 보이기도 한다. 손님이 좋아하는 맛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요리사가 연극 제작진이라면 요리사가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어떻게 이런 맛이 나왔는지를 궁금해 하는 손님은 연극 관객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분석한 것이나 만들어진 것을 보고 연구하고 분석하는 것이나 비슷한 측면이 있다. 공산품의 조립과 분해의 과정처럼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겠지만 작품을 분석하는 것도 어느 정도 치밀한 과학적 계산이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생각해 볼 것은 제작환경으로, 연극을 만드는 입장에서나 관객의 입장에서나 작품분석의 첫 번째 순서로 고려해 볼만하다. 보통 가장 먼저 생각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대본분석보다 제작환경이 앞서는 이유는 기존에 있던 대본을 선정한 이유 혹은 새로 대본을 창작한 이유 또한 제작환경에 있기 때문이다. 제작자들의 개인적 특성과 자본력을 포함한 시스템의 특성, 제작 당시의 국가적, 시대적 상황 등 공연작품과 관련되어 있는 모든 특성은 어쨌든 제작환경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만일 어떤 고전작품의 공연을 보았다고 가정해 보자. 작품분석을 위해서는 제작진이 왜 그 작품을 선택한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오래된 작품이라 신선하지 않겠지만 선정한 이유는 연출가나 제작자의 개인적 선호도 문제일 수도 있고 현시대의 사회적 문제를 반영하기 좋아서일 수도 있다. 또 극장문제와 관련해서는 대극장이 아니라 소극장을 선택했다면 관객과의 소통을 위한 방법일 수도 있지만 제작비 부족이라는 현실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심지어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고전을 선택한 하나의 배경이 될 수도 있다. 이는 약간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어느 것 하나 무시해서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 그 작품인가?' '왜 그러한 기법을 사용했는가?' '왜 그 극장을 선택했는가?' '왜 그 배우가 출연하는가?' '왜 관람등급은 그렇게 정했는가?' 등 수많은 물음에 대한 답은 결국 제작환경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은 하나가 아니라 둘 이상이 중복될 것이고 그것들이 연극의 막을 올리게 한 주요한 배경이 된다. 이러한 점들은 연극전문가가 또는 연극 마니아가 연극평론을 할 때 혹은 작품분석을 할 때 아주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앞서 말한 것처럼 아무런 이유도 없이 고전작품을 공연할 리는 없다. 하지만 그 이유가 단지 현실적인 문제만으로 비친다면 공연의 의미 자체가 조금 퇴색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고전이라면 말 그대로 고전의 힘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시대에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훌륭한 공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전이라고 불리는 테두리 안에 들지 못하는 작품, 예를 들어 특정 국가나 시대의 특징만을 반영하고 있어 전혀 공감이 가지 않는 작품을 그대로 공연했을 때는 문제점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런 경우 연극평론 과정에서 작품을 분석하며 첫 번째로 지적할 수 있는 문제점은 대본이 아니다. 특정 시대에는 성공했던 대본의 문제라기보다는 현재의 관객에게 유효하지 않은 그 대본을 선택한 제작자나 연출가 등 제작환경에서 발생한 문제인 것이다. 시대에 맞는 작품을 선택하지 못한 문제 혹은 시대에 맞게 각색하지 못한 문제이지 그 대본 자체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작품분석을 위해서 첫 번째로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대본이나 연기, 무대가 아니라 제작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을 수도 있는 제작환경이라는 요소가 연극 제작진에게는 작품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연극평론가나 관객에게는 작품분석을 위한 첫 번째 단계임에 분명하다. 그러니 연극을 이해하고 작품을 분석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연극의 제작환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안희철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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