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미 FTA와 대구경북 경제] <하>기업 구조 개편

'FTA 정글의 법칙' 시작되다

한미 FTA 비준안 통과로 국내 기업들의 미국 수출문이 크게 열렸지만 혜택을 보려면 상당한 준비가 필요하다.

영업 및 정보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제조업 중심의 중소기업이 산재한 지역으로서는 원산지 증명 등 수출 시장을 두드리기 위해 넘어야 할 장애물들이 많기 때문. 전문가들은 미국 진출을 철저히 준비한 기업들만 살아남아 기업의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와 산업구조 재편 등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준비한 기업만 살아남는다.

한미 FTA는 그동안 우리나라가 체결한 다른 무역협정보다 관세 혜택이 클 것으로 보이지만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대구경북지역은 관세 혜택 준비의 유무에 따라 기업의 양극화가 예상된다.

대구상공회의소 이종학 팀장은 "한미 FTA의 관세 혜택은 원산지 증명이 선행돼야 하지만 이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 인력 등이 만만치 않아 중소기업들은 미국시장을 두드리기 전에 주저앉을 수 있다"며 "또 미국에 수출하기 위해서는 수출업체뿐 아니라 하청업체에서도 원산지 인증이 병행돼야 하기 때문에 수출하지 않는 기업들도 한미 FTA를 준비하지 않으면 물량을 납품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수출길을 열기 위해 기업들이 '히든 코스트'(Hidden Cost)를 지불해야 하지만 소규모 중소기업이 많은 대구경북은 이러한 비용 마련이 쉽지 않을 것이라 예측했다.

지역의 중견 자동차부품 회사는 "한미 FTA를 대비해 원산지 증명 시스템 구축을 추진해 왔지만 비용이 무려 10억원이나 필요하다는 예측이 나왔다"며 "우리보다 규모가 작은 다른 업체들은 비용뿐 아니라 인력도 부족하고 복잡한 준비 절차로 인해 원산지 증명에 손도 못 댈 수 있다"고 털어놨다.

한미 FTA의 원산지 증명은 정부가 원산지를 인증해 주는 다른 FTA와 달리 자율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또 한미 FTA가 발효되면 수입국 세관 당국이 수출국의 수출업체나 생산자를 대상으로 조사가 가능하다. 특히 섬유나 의류의 경우 수입국 정부 요청에 따라 수출국 정부가 공동으로 현장 실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지역 섬유업계는 더욱 원산지 증명에 신경 써야 한다.(표 참조)

섬유산업연합회 관계자는 "원산지 인증만 받으면 되는 한EU FTA와 달리 미국은 국내 생산설비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도 제출해야 하는데 개별 업체는 이를 잘 모르고 자체적으로 제출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지역 중소기업들은 그동안 선행된 자유무역협정의 관세 혜택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어 이전보다 더욱 복잡한 규정의 한미 FTA 활용이 높을지는 의문이다. 대구경북연구원의 'FTA가 대구지역에 미치는 영향과 활용방안'에 따르면 FTA를 활용하는 지역 기업은 34%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앞으로 발효될 FTA 대비 상황에 대한 물음에서도 전체 응답자의 절반을 훨씬 넘는 68.4%가 '대비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경일대 손수석 교수는 "기업은 자신들의 제품이 FTA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제품인지를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한다"며 "관리 시스템을 빨리 구축한 기업이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조언했다.

◆지역 산업구조 바뀔까

한미 FTA는 장기적으로 지역 산업구조마저 바꿀 수 있다. 미국의 주력 수출품목인 자동차부품과 섬유 등이 떠오르면서 제조업종의 성장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 대경연구원은 한미 FTA로 대구경북의 제조업이 각각 연평균 1천800만달러, 1억9천400만달러의 수출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대구시 역시 단기적으로 경쟁력이 취약한 소상공인, 영세기업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 까다로운 원산지 증명으로 제조업체의 해외 이전을 막고 미국 수출을 위해 중국과 동남아 등 값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이전한 국내 기업들의 유턴으로 산업 전반에 걸친 변화도 예상된다. 섬유산업연합회 관계자는 "원산지 증명에서 원사가 기준인 섬유의 경우 한미 FTA를 겨냥해 최근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의 국내 리턴 검토가 증가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최근 코트라의 현지 바이어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미 FTA 발효 후 한국으로 거래 전환 의사가 있다는 응답이 61%에 달했다.

지역 기업 중 중국과 동남아 현지에 공장을 두고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 역시 원산지 증명과 미국 수출 등을 두고 국내 이전 등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자동차부품 업계 종사자는 "중국에 공장을 둔 한 업체가 원산지 증명 때문에 전문가로부터 컨설팅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업종의 변화에 대해 대구시와 경북도는 수혜 예상 제조업 분야에서 업종별, 공단별 순회 설명회를 열어 FTA 대응 전략 및 비즈니스 모델 등의 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다.

노경석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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