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에 나온 미국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은 웰즐리여자대학의 개학식 의례(儀禮)로 시작됩니다. 식이 열릴 대강당에 총장과 교수들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고, 좀 떨어진 곳에 모여 있던 학생들이 무리를 지어 몰려옵니다. 그리고 학생 대표가 나서서 나무망치로 강당 문을 두드리면 안에서 기다리던 총장이 질문을 던집니다. '총장 : 누가 배움의 문을 두드리는가? 학생 대표 : 학생 대표입니다. 총장 : 그대들은 무엇을 구하는가? 학생 대표 : 학업에 충실하여 정신을 일깨우며 진리 탐구에 매진하고자 합니다. 총장 : 그렇다면 그대들을 환영한다. 모두 안으로 들어오너라. 이제 새로운 학년의 시작을 선포하노라.' 이 대화에 이어 강당 문이 활짝 열리고 학생들이 줄지어 들어가 자리를 잡으면 바야흐로 개학식이 시작됩니다. 개학식의 의의가 충분히 잘 드러나는 매우 인상적인 의례 장면입니다.
의례는, 어떤 일에 대해 집단이 공유해야 할 의미를 올바로 확인하고 확대 재생산하여 구성원들로 하여금 스스로 참여하며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문화장치입니다. 그런데 요즘 여러 기관이나 단체에서 주관하는 의례에 참석해 보면, 그 법식이 관습에 발목 잡히고 비본질적 논리에 구겨져서 구태의연하고 무미건조하며 요식행위에 머물러 싱겁기 그지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참으로 가난한 문화의 벌거숭이 현장이지요. 그중에서도 의례를 망치는 주범은, 독립신문의 사설 같은 문어체로 남이 써준 원고를 '…에에, 또, 저, 그리고…'를 섞어 더듬거리며 읽어가는 담화들이 아닐까 합니다.
어느 지방자치단체에서 주관한 행사장에서 벌어진 일이랍니다. 그날 행사는 연말을 맞아 지난 1년간 각 분야에서 뛰어난 성취를 이루었거나 훌륭한 일을 한 주민들에게 표창장과 함께 푸짐한 상금까지 주어 칭찬하는 축제마당이었는데, 판에 박힌 듯한 국민의례에 이어 단상에 오르신 단체장님, 왼쪽 안주머니에서 식사(式辭) 원고를 꺼내 읽기 시작했습니다. '…에에 또, 엄동설한의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는 한파 속에서도 불철주야 산불을 예방하기 위해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고 늘 노심초사하시는 여러분들이기에…' 한참을 귀 기울여도 주파수가 맞지 않는 이야기에 관중석이 술렁이고, 사회석의 총무과장님이 손짓발짓하며 원고가 바뀌었다는 신호를 보냈지만 단체장님은 두 시간 후에 산불예방발대식에서 읽을 원고에다 코를 박고 내려가다가 거의 끝부분에 이르러서야 사태를 깨닫고 오른쪽 주머니의 원고를 다시 꺼내 읽었답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장면입니다. 이처럼 담화가 지극히 형식적이고 하나의 요식행위로 여겨지는 문화풍토라면 설령 그분이 처음부터 오른쪽 주머니 속의 원고를 제대로 꺼내 읽었더라도 그 행사에 대한 의미가 군중의 가슴으로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겠습니까? 행사의 의의를 일깨우는 말씀보다는 높은 분의 얼굴 자체가 메시지인 의례라면 지나친 표현일까요.
이보다 더 우스꽝스러운 의례 장면은 행사의 주인공을 뒷전으로 밀어내고 축하객들끼리 놀아나는 모습입니다. 얼마 전 시내 모 화랑에서 보호시설 청소년들의 작품전 오픈 행사가 열렸었는데요. 맨 앞자리부터 맨 뒷자리까지 지역의 선출직 의원들을 비롯하여 유관 기관장 그리고 관련 협회 회장님들이 빼곡히 앉아 주최 측의 예쁜 아가씨가 건네준 꽃다발을 가슴에 달고 그야말로 자리를 빛내고 계셨지요. 먼저 사회를 맡은 분이 왕림하신 손님 한 분 한 분을 요란한 박수소리 속에서 극진한 예를 갖추어 소개한 뒤, 이어서 관장님이 단상에 올라 인사말을 하시는데, 이 말씀 또한 삼분의 이는 조금 전 사회자가 소개한 손님들의 이름을 일일이 다시 거명하며 참석해주셔서 고맙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축사가 이어지는데 마이크 앞에 나서는 분들마다 서로서로 높은 직함과 이름 앞에 존경의 말을 덧붙여 호명한 뒤 '…에에, 또, 참, 그리고…'의 담화를 이어가는데, 정작 작품을 낸 학생들은 뒤에 서서 어슬렁거리다가 아예 행사장을 빠져나가 밖에서 서성대고 있었습니다. 왜 이런 모습이 연출되는지 그 이유를 꼭 집어 말씀드리지 않더라도 짐작은 하시겠지만, 이상한 논리에 의해 의례가 형편없이 구겨지는 대표적 장면입니다.
일상의 굽이마다 행해지는 많은 의례 행사들, 지극히 관습적으로 행해지는 그 의례 절차를 늘 새롭게 디자인해가는 노력이 우리의 삶을 더욱 생동감 있게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의례의 의미를 생생하게 살려내는 격조 높은 담화가, 구성원들로 하여금 스스로 빚어낸 생각과 경험들을 공동의 이야기로 승화시키면서 그 시공간의 문화 주체자로 거듭나게 하는 힘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지요.
김동국/시인·대구 두산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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