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구는 작품에 옷을 입히는 작업입니다. 어떤 옷을 입느냐는 작품의 완성도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지요." 예전표구사 대표 이현식 씨는 마침 표구를 하고 있었다. 서예 작품 뒷면에 고운 물을 뿌려 먹으로 울퉁불퉁해진 종이의 구김을 편다. 그 후 물에 갠 묽은 풀을 표구용 한지에 발라 작품에 배접한다. 자칫 작품과 뜰 수 있기에 꼼꼼하게 솔질을 한다. 구김이 심하던 작품은 거짓말같이 깨끗하고 판판해진다.
1975년부터 표구를 해온 그의 노련한 손길로 작품은 새 옷을 입는다. 표구란 서화에 종이나 비단을 발라 꾸미고 나무와 기타 장식을 써서 족자, 액자, 병풍 등을 만드는 일이다. 서책과 서화첩의 장정을 포함한다. 원래 훼손된 문화재를 복원하는 기능까지 맡았지만 요즘은 주로 족자나 액자, 병풍 만드는 일을 주로 다룬다. 배첩장이라고도 한다.
표구사는 서예나 한국화의 부침에 따라 같이 움직인다. 1970년대 중반, 대구에 10여 곳에 불과하던 표구사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한때 300여 곳에 이르렀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 직후 곧장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50~70군데에 불과하다.
"표구는 불교문화가 들어오면서 시작됐을 만큼 역사가 깊어요. 우리나라 기록에는 삼국시대에 표구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요. 한때 표구 학원이 성업할 정도였지만 이제는 기술을 배우려는 젊은 사람마저 사라졌어요."
이 씨는 표구를 어깨너머로 어렵게 배웠다. 매일 보고 들은 것을 일지에 적어 혼자 다시 반복해야 했다. 1970년대만 해도 먹이 좋지 않아 물을 뿌리면 번지기 일쑤였다. 혼자 신문을 이용해 수없이 배접을 연습했다.
배접할 때 사용하는 풀 하나도 만들기가 쉽지 않다. 밀가루를 물에 가라앉혀 3년쯤 삭힌 후 이를 끓여 체에 밭혀 사용한다. 풀을 얇게 발라도 강도가 센 이유다.
그는 지금까지 대형 작품도 곧잘 해왔다. 36폭 병풍 두 점, 60폭 병풍 두 점, 168평 병풍까지 완성할 정도로 대형 작품을 많이 해왔다. 남들이 모두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지만 그는 해냈다. 독립기념관 등에 그가 만든 작품이 들어가 있다. 이처럼 대형 작품을 표구한 이는 전국에도 손꼽힐 정도다.
그는 지난달 문화재수리기능자 자격증 시험을 쳐서 합격했다. 지금까지 합격자는 경상남북도 합해 고작 3명에 불과하다. 작년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까다로운 시험이다.
"제가 공부할 때는 전통방식 그대로 배워 기초가 탄탄합니다. 사실 문화재 복원도 그때 배웠죠."
손님들은 가끔 훼손된 작품을 가지고 오기도 한다. 그러면 잘 손질해 문화재가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배첩장의 일이다. 은해사 운부암의 300년 이상 된 탱화를 복원한 적이 있다. 곰팡이가 슬고 작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심한 훼손이 됐지만 핀셋으로 일일이 분해해서 다시 배접했다. 고서를 많이 대하다 보니, 고문서 진위 여부도 전문가 못지않게 가려낸다.
"이 일은 공부가 끝이 없어요. 늘 새롭고 깨끗한 마음으로 작품을 대해야 하지요. 아마 힘이 있는 날까지 이 일을 계속해서 최고의 장인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