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거짓말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거짓말의 발명'(2009년'사진)이란 영화가 있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진실과 사실만 얘기한다. 회사에 결근을 알리는 전화를 하면서도 "아픈 것이 아니라, 너희들 꼴이 보기 싫어서 하루 쉰다"고 말하고, 남의 애를 보고는 "어머, 애 참 못 생겼네요. 꼭 쥐새끼같이 생겼어요"라고 말한다.
선을 보는데 어머니가 전화로 "어때?"라고 묻는다. 남자 앞에서 여자는 "네 지금 같이 있어요. 못 생겼어요. 돈도 못 벌고요. 뚱뚱하고 들창코가 웃겨요. 당연히 같이 안 자죠. 키스조차 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대답한다. 솔직하고 직설적인 평가지만, 입장 바꿔 놓고 보면 결코 듣고 싶지 않은 말이다.
주인공의 비서는 또 이렇게 얘기한다. "나같이 잘난 여자가 당신 같은 무능력자의 비서로 일하는 것도 참 자원낭비죠?"
이 세상은 모든 사람이 과장없이 있는 그대로를 얘기한다. 콜라를 광고하는 CF도 "성분도 몇 년째 그대로고요. 따라서 광고할 건 딱히 없습니다만, 디자인만 살짝 바꿨습니다. 백곰을 한 마리 그려 넣었죠"라는 식이다.
영화는 더하다. 나폴레옹의 활약을 그린 블록버스터 대작영화 '나폴레옹:1812년-1813년'이 상영되는데 내레이터가 "그래서 나폴레옹은 사격병과 포병으로 구성된 7만여 군사를 이끌고…"라면서 1812년부터 1813년까지 있었던 일을 몇 시간 얘기해주는 것이 고작이다. 화려하게 치장을 하거나 상상력을 동원할 수도 없고, 당연히 눈속임도 없다.
회사에서 해고되고, 밀린 집세 독촉에 시달리던 주인공이 은행을 찾는다. 통장 잔고는 300달러, 내야 할 집세는 800달러다. 마침 시스템이 다운된 상태. "얼마를 찾느냐?"는 창구 직원의 말에 주인공은 "800달러"라고 말한다. 그리고 창구 직원은 800달러를 준다.
거짓말의 탄생 순간이다. 이제 주인공은 다른 세상을 살게 된다. 상상력이 가미된 이야기로 대박영화를 만들고, 사랑도 얻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기도 한다. 특히 주인공이 병원에 가서 노인들을 위로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귓속말로 뭐라고 하자 노인들은 함빡 웃음을 짓는다. 아마 "20대처럼 젊어 보인다"고 하지 않았을까.
이 영화는 진실되지만 무미건조한 세상과, 사실은 아니지만 남에 대한 배려로 더욱 따뜻해진 두 세상을 보여준다. 영화나 소설 등 허구에는 모두 사실이 아닌 것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거짓이라기보다는 이야기의 조미료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거짓말은 싫어한다. 그러나 타인에 대한 배려가 담긴 하얀 거짓말도 있다. 오죽하면 '남의 말 좋게 하자'는 구호도 생겼을까. 연말에는 더욱 필요한 따뜻한 배려들이다.
김중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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