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영재의 행복칼럼] 존재의 이유

나는 선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희망을 느낀다. 존재의 이유를 느낀다. 수학자들은 점과 점의 가장 가까운 거리는 선이라고 했다. 그 선을 밀가루 반죽처럼 밀면 면이 된다. 그 면을 구부리면 형체가 된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을 점에서 시작한다. 점은 선을 위한 준비이다. 점은 만물의 씨앗이고 선은 만물의 출발이다.

길에서 강둑을 올려다보면 그 둑과 하늘이 만나면서 그려지는 선은 나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저 강둑을 넘으면 강물이 흐르고 강변에는 온갖 풀과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을 것 같은 희망 때문이다. 고개를 이루는 양쪽 산의 선과 고개의 마루를 이루는 선 'ㅛ'자의 선을 보면 그 선의 배경을 이루는 하늘이 우선 보기에 좋고 다음에는 그 언덕을 넘어서서 존재할 희망의 그 무엇들이 예상되기 때문에 가슴이 또 뛴다. 시골길에서 동네로 들어가는 굽은 길이나 거꾸로 동네서 들녘으로 나가는 황톳길 또한 기분이 좋다. 동네는 따뜻한 고향 이미지여서 기분이 편하고, 들녘은 만물이 자라고 열매 맺는 곳이기 때문에 희망을 준다. 산골짜기 시냇물의 여러 가락을 이루는 선도 좋다. 이 선들이 모여 작은 물결을 이루고 게다가 노래까지 부르니 반갑고 저 물결이 가는 곳은 모든 것을 품어주는 대양이기 때문에 희망차서 좋다.

저녁의 시골집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좋다. 갈래갈래 올라오지만 결국은 낱낱의 실 같은 연기가 모여 만든 실타래가 연기인 것이다. 그 연기는 하늘로 오른다. 모든 인간이 가고자 하고 우러러보는 그 희망의 하늘로 가는 선의 뭉치들이어서 보기가 좋은 것이다. 황혼의 도회 집들의 그 실루엣이 보기 좋다. 집은 고달픈 오늘을 쉬게 하여 희망의 내일 준비를 위한 항구이다. 창조와 기운을 모으는 곳인 집이다. 밤의 집은 그래서 좋다. 마천루가 하늘에 그리는 높은 선들의 경쟁이 보기 좋다. 개미만 한 인간이 수십 미터의 콘크리트를 저렇게 놓게 쌓아 올리다니 인간의 힘과 지혜가 정말 위대하다는 뿌듯함이 느껴진다.

철로의 긴 레일이 맞닿는 곳을 보고 있노라면 그곳에 꿈이 담뿍 모여 있을 것 같은 희망의 장소로 보여 진다. 찬겨울 파란 하늘에 희고 긴 비행운을 보면 기분이 좋다. 새처럼 날 줄도 모르는 어설픈 인간이 저렇게 높은 하늘에 마치 도화지에 그림 그리듯 일필휘지로 내 뿜는 그 구름의 직선을 만들 수 있다니. 박물관의 청자와 백자의 얄미운 곡선, 신라 금관의 곡옥의 푸른 굽은 선들은 옛 사람과 내가 지금 함께 존재한다는 기쁨을 준다. 고궁 처마의 곡선과 절간 처마에 달린 풍경은 가을 하늘의 푸른색을 배경으로 할 때 울고 싶도록 아름답다. 명동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의 그림과 불국사 석가탑과 다보탑의 담백하며 성스런 선들은 신앙의 신비와 또한 인간의 고상함을 느낄 수 있어 감동적이다. 이런 선들에서 우리는 행복을 찾을 수 있다.

권영재 미주병원 진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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