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본 이름은 배태권인데 형님 대신해서 내가 (러시아 사할린에) 왔어요. 형님은 얼라(아기)가 하나 있고 나는 결혼한 지 1년 정도라 아직까지 아기도 없고. 그런데 형님에게 종용(징용장)이 나왔답니다. 형님을 데리고 가려고. 그래가 내가 형님 대신 징용가겠다고. 그래서 사할린에 왔어요." (배태권'91'브이코프 거주'원적지 대구시 동구 덕곡동)
1일 오전 경북도청 본관 현관. '사할린 경상도 사람들'의 콘텐츠 전시회인 '사할린의 여름 하늘은 낮다'가 열리고 있었다. 관람객들은 경북지역 출신 사할린 동포들의 현재의 모습과 문화를 도시별로 살펴보고, 동포들의 생애를 담긴 사진과 영상을 감상했다.
이번 전시회는 경상북도와 (사)인문사회연구소가 지난해부터 추진하고 있는 '해외동포 정체성 찾아주기 사업'의 하나로 마련됐다. 전시회는 2일까지 경북도청 본관 현관에서 열리며, 7일부터 9일까지는 경북대 KNU아트갤러리 '스페이스9'에서 개최된다.
경북도와 인문사회연구소는 올해 유주노사할린스크와 브이코프, 코르사코프, 홈스크 등 사할린의 4개 도시를 돌며 경상도 출신 동포들을 만나 역사를 기록했다.
인문사회연구소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때 일제는 1945년까지 15만 명의 한국인들을 러시아 사할린으로 데려갔다. 이들 중 70% 이상이 경상도 출신이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남사할린에 남아있던 한국인들은 4만3천여 명 정도이다.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인을 일본 국적을 상실한 외국인으로 취급하고 승선 대상에서 뺐다.
구 소련도 이들을 한국으로 보내지 않았다. 전쟁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사할린에 남은 한국인들은 버려진 신세가 됐고, 잊혀진 존재로 남게 됐다.
신동호 인문사회연구소 소장은 "사할린 동포들과의 교류는 이해와 공감에서 시작돼야 한다"면서 "경북도가 중국 동북3성과 러시아 사할린에 이어 더 많은 동포들과 교감하고 공감하는 문화적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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