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은 중앙에서 핵심적인 결정을 내리고 통제 시스템이 잘 작동하면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풍성한 결과를 낳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결과물은 통계가 잘 보여줄 터였다. 그래서 그는 평생 지칠 줄 모르고 공식 조사보고서에 파묻혀 살았다. 이에 따라 경제 관리 부서와 국유 공장들은 엄청난 양의 통계 자료를 만들어내야 했다. 그러나 이들 통계 자료는 실제 상품 생산량과는 별개였다. 조금 과장하자면 못 3천t을 생산하라는 지시를 내리면 크기나 용도별로 다양한 못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10t짜리 못 300개를 만들어내는 식이었다. 소련 경제가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칠레에서 선거로 집권한 아옌데 사회주의 정권도 같은 실패를 맛봤다. 아옌데는 매우 획기적인 계획경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사이버신'(Cyber-Syn)이라고 명명된 이 프로젝트는 '버로스 3500'이라는 슈퍼컴퓨터로 국가 경제를 관리하는 것이었다. 현장 근로자가 매일 아침에 생산량과 부족분 등 각종 정보를 텔렉스로 보고하면 중앙의 지휘본부는 이를 바탕으로 슈퍼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의사 결정을 내린 다음 이를 현장에 내려 보내는 방식이었다. 야심 찬 계획이었지만 실패로 끝났다. 현장 관리자들이 보고하고 싶은 것만 보고하고 문제가 될 만한 정보는 감췄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고성능 컴퓨터라고 한들 제대로 된 통계 자료를 생산해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더 나쁜 것은 집권 세력이 의도적으로 통계를 조작하는 것이다. 치적 홍보를 위해서든 정책 실패를 호도하기 위해서든 '통계 마사지'는 다반사로 일어난다. 지금 세계경제 위기의 진원지인 그리스가 대표적인 예다. 최근 그리스 검찰은 안드레아스 게오르기우 통계청장을 기소했다. 2009년 재정적자 규모를 국내총생산(GDP)의 13.4%에서 15.8%로 부풀려 국가의 이익을 해쳤다는 혐의다. 혐의가 인정되면 종신형이다. 그러나 게오르기우 청장은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나는 통계 조작을 하지 않아서 기소됐다"고 되받아쳤다. 그 말이 맞다. 통계 조작을 한 것은 그리스 정부였다. 유로존 회원권을 얻으려고 재정적자 규모를 줄였던 것이다.
한국도 다를 게 없다. 지난달 실업률은 3%였다. 고용 정책의 로망이라는 완전고용 수준이다. 그러자 주무 장관은 '고용 대박'이라고 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니 '쪽박'이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조사 방식을 약간 바꿔 보니 실제로는 5.4%로 올라간 것이다. 구직 포기자 등을 포함한 잠재실업률은 현행 4.8%에서 무려 21.2%로 높아졌다. 정부가 국민에게 완전고용이란 거짓말을 한 셈이다. 이런 통계 마사지는 의도적이라는 점에서 '죄질'이 매우 고약하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지난 2009년 결산 때 다양한 실업 지표를 개발하라고 지시한 뒤 국정감사 때마다 다시 촉구했지만 통계청은 지금까지 묵묵부답이다.
소비자물가 통계도 마찬가지다. 통계청은 물가 조사 대상 품목에서 가격이 급등한 금반지를 빼는 등 품목을 바꾸고 품목별 가중치를 조정했다. 그러자 10월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4%에서 4%로 낮아졌다. 금반지를 제외한 데 대해 소비재가 아니라 '투자 목적 자산'이라는 이유를 내세우지만 국민의 눈에는 수치를 가공하기 위한 '꼼수'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이렇게 마사지한 통계 수치가 체감될 리 없다. 이는 정부가 생산하는 모든 통계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국가부채 통계가 그렇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준정부기관과 공기업 부채를 국가부채에 포함시키도록 권장하고 있다. 공공기관이 갚지 못하면 정부가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따르지 않고 있다.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35.1%의 양호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공기업 부채를 넣을 경우 국가부채 비율은 67.4%로 급상승한다. 그리스를 비웃을 처지가 아닌 것이다.
사람의 뇌는 스스로 만든 거짓말에 속는다. 임신을 간절히 원하다 보면 임신한 것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바로 상상임신이다. 그래서 최고의 거짓말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외환위기 당시 정부가 딱 그 꼴이었다. '펀더멘털이 좋다'는 말에 국민도 속았고 정부도 스스로 속았다. 이 정부도 통계로 국민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鄭敬勳/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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