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닥터 최중근의 세상 내시경] 美 월가 시위 '강 건너 불' 아니다

뉴욕 맨해튼의 월가(Wall Street)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 금융의 심장부다. 최근 이 월가에서 몇 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미국 젊은이들의 시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미국 전역은 물론이고 전 세계로 확산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억만장자 금융인 조지 소로스와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 등 유명인들의 지지도 잇따르고 있고, 노동계와 진보성향의 시민단체들도 참여 또는 동조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뉴욕의 대학생들까지 월가를 규탄하는 집단수업거부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시위대의 주된 구호는 금융산업의 탐욕을 비판하는 것이다. "최고 부자 1%에 저항하는 99% 미국인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구호가 그것을 대변해주고 있다. 그들의 눈에 월가는 부패하고 쉽게 돈 벌며 정부의 혜택을 받는, 불평등한 사회의 상징 같은 존재다. 그래서 시위대는 금융산업을 규제하라고 요구하고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거두라고 주장한다. 장소를 월가로 정한 것만큼이나 이들의 시위 방식도 눈길을 끈다. 시위 초기 이들은 침낭을 가져와 인근 공원에서 밤을 함께 새웠다. 돈과 필요한 물품을 서로 나누고 삼삼오오 모여 자유롭게 생각을 교환했다. 공동체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인데 이것은 시위가 1회에 그칠 것이 아니라 장기간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 시위대는 금융산업의 탐욕뿐 아니라 빈부격차, 빈곤, 실업, 양극화, 환경, 전쟁 그리고 최근 논란 속에 사형된 트로이 데이비스의 죽음까지 다양한 사회 문제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금융권과 정부에 대한 단순 항의가 아니라 세상을 지배하는 기성 가치관에 대한 저항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또 좌절된 세대의 분노와 좌절의 폭발이라는 점에서 지난 8월 발생한 영국 폭동과 유사하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금융권의 정경유착과 도덕적 해이, 대량해고와 주택압류 급증, 소득 감소와 은행 수수료 인상 등 이번 시위의 주요 요인들을 보면 저소득층뿐 아니라 중산층까지 가담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비록 미국의 일이라고 하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결코 '강 건너 불구경' 할 일이 아니다. 세계 경제가 어려워지고 장래가 불확실해지자 국내 대기업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유동성 확보였다. 대기업은 돈을 움켜쥐고 내놓지를 않았고 금융권은 가계 부채가 위험하다며 대출 규제에 들어갔다. 당연히 중소기업과 서민들부터 고통을 받는다. 그 와중에 저축은행 퇴출 사태에다 권력 실세들의 비리 의혹까지 불거져 나오고 있고, 더 기가 막힌 것은 은행들이 극심한 대출 규제 속에서도 예대 마진을 높여 올 상반기 사상 최대 규모의 이자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경제가 어렵고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있는데도 은행은 최대 수익을 올렸다는, 이해되지 않는 경제구조는 우리의 문제가 심각함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물론, 글로벌 경쟁시대를 맞아 대기업이나 은행들이 살아남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명제다.

NYT는 미 전역으로 번져가는 이번 시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알아내지 못한다면 시위는 위험한 양상으로 번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사람 중심의 경제 질서가 우선되는 것이다. 그래야 국가경제의 건강성도 회복될 수 있다. 시위대의 피켓 내용을 보라. '돈보다 사람이 우선이다!'

(구미 탑정형외과연합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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